주부 이모(63) 씨는 밤이 두렵다. 그를 오랫동안 괴롭혀온 불면증 탓이다. 하루도 수면제가 없으면 잠을 이루지 못해 밤새 뒤척였고, 낮에는 자주 기분이 변하고 무력감에 시달렸다. 이 씨는 수면제 처방을 받기 위해 찾은 병원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이 씨는 "그냥 성격이 예민한 탓이라고 여겼는데 우울증 진단을 받고 굉장히 놀랐다"고 푸념했다.
편안한 잠은 건강을 유지하는 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수면은 몸의 생체 리듬을 유지하고 신체 조직과 신경계의 회복 기능을 높이며 면역력을 유지한다. 수면 시간이 짧으면 몸의 생체 리듬이 깨질 뿐만 아니라 신체 기능회복에도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이 때문에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고 위기에 대처하는 능력이 떨어지며 뇌의 충동 조절 기능에 이상을 일으켜 우울증과 자살 위험을 높일 수 있다.
◆해마다 늘어나는 불면의 밤
우리나라 국민의 수면 부족은 심각한 수준이다. 올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의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은 7시간 41분으로 OECD 회원국 중 최하위로 나타났다. OECD 국가들의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인 8시간 22분보다 40분이나 짧은 셈이다. 지난 2012년과 비교해도 8분이 줄었다.
수면 부족으로 병원을 찾는 이들은 해마다 늘고 있다. 1주일에 사흘 이상 수면 부족을 겪으면서 낮 동안 생활에 지장을 받은 경우가 3개월 이상 지속된다면 불면증으로 본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불면증으로 진료를 받은 환자는 지난 2011년 32만5천 명에서 지난해 45만6천 명으로 40.2%나 증가했다. 최근 5년간 불면증 치료를 받은 이는 193만 명을 넘는다. 같은 기간 총 진료비도 320억원에서 502억원으로 57.1% 증가했다.
성별로는 여성이 남성보다 1.5배 많았다. 최근 5년간 남성 불면증 환자는 78만8천 명인 데 비해 여성은 115만 명이나 됐다. 연령대별로는 50대가 40만7천 명으로 21%를 차지했고, 70대 18.4%(35만7천 명), 60대 17.5%(34만 명) 등의 순이었다. 인구 10만 명당 불면증 진료 인원은 서울이 1천19명으로 가장 많았고, 충남, 부산 각 1천7명, 경북 968명 등이었다. 대구경북의 불면증 환자 증가세도 가파르다. 지난 5년간 증가율은 경북이 53%로 16개 시'도 중 두 번째로 높았고 대구도 45.2%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불면은 극단적인 선택 부를 수도
불면증은 우울증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수면 시간이 짧아지면 뇌에서 나오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이 줄어든다. 세로토닌의 부족은 우울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세로토닌은 뇌에서 충동을 조절하고 올바른 결정을 내리도록 돕는데, 기능이 저하되면 충동성이 증가하고 합리적인 결정 능력이 떨어져 우울증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
'스트레스-불면'의 악순환이 거듭되는 점도 문제다. 각종 스트레스는 뇌의 시상하부에서 뇌하수체, 부신으로 연결되는 체계를 비정상적으로 활성화시킨다. 이 때문에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졸을 비롯해 부신피질자극호르몬과 카테콜아민 등의 분비가 늘어 수면의 질을 떨어뜨리고, 반복되는 불면은 다시 스트레스 요소로 작용해 불면의 악순환이 거듭된다. 이 같은 악순환이 거듭되면 코티졸이 과다 분비돼 뇌의 기억체계를 흩트리고, 만성피로와 면역 기능 저하 등을 유발하고, 우울증이나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수면 부족은 뇌 기능에도 이상을 일으킨다. 특히 전두엽의 기능 저하가 대표적이다. 전두엽의 기능이 떨어지면 인지 기능과 실행 기능이 저하된다. 이는 충동 조절 문제나 의사 결정 능력의 약화로 이어지고, 직접적인 자살 행동을 유발하기도 한다. 문제는 수면 부족이 만성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만성적인 수면 부족은 불면증이나 기면증 같은 수면 장애 질환으로 진행된다. 수면 부족이 만성 불면증으로 이어지면 우울증 위험이 10배가량 증가한다. 이 밖에도 불안 장애나 알코올 중독, 조현병 등 정신질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잠 못 든다면 생활 습관 잘 살펴야
불면-우울증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평소 생활 습관을 잘 살펴야 한다. 우선 명상이나 자기 최면 등 '이완 요법'을 활용해 집중을 방해하는 불안이나 잡념 등 산만한 요소를 없앤다. 잠자리에서 책이나 TV, 스마트폰을 보거나 야식을 먹는 등 수면을 방해하는 행동은 하지 않아야 한다.
잠이 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잠자리에 너무 오랫동안 머무는 행동은 오히려 수면을 방해할 수 있다. 잠자리에서 10분 이상 뒤척거리지 않고, 졸리기 전에는 잠자리에 들지 않는 것이 좋다. 취침 시간과 기상 시간을 일정하게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규칙적인 운동은 수면에 도움이 되지만 밤에 격렬한 운동을 하는 것은 숙면을 방해한다. 술이나 커피는 피하는 것이 좋다.
스트레스도 잘 관리해야 한다. 적극적으로 감정을 발산하거나, 걱정거리가 있으면 잠시 멈추는 시간을 가지면서 일상적인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것이 좋다. 차를 마시거나 산책, 드라이브, 여행 등 행위 자체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도 도움이 된다.
수면제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만 의존성이 심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수면제는 단기간 적정량을 복용해도 되지만 불면증이 지속된다는 이유로 복용량을 임의로 늘리면 의존성이 높아질 수 있다. 또 수면제를 갑자기 끊었다가 인지장애나 금단 증상을 겪을 수 있다.
유연수 대구파티마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은 "잠에 대해 너무 걱정하는 것은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나는 잘할 수 있다' '나는 나를 믿는다' 등 자기 암시나 자기 최면으로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도움말 유연수 대구파티마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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