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삼식이라 하다니 삼식 씨여, 반성하십시오-제2회 매일시니어문학상 [수필] 우수상

아뿔싸, 요즈음 집집마다 바깥양반들이 구박데기로 전락하다 못해 한 술 더 떠서 '삼식이'로 불린다고 한다. 허구한 날 방콕 백수로 지내며 '놀아줘!' '밥 좀 줘!' '용돈 좀 줘!' 성가시게 군다고 지청구 삼아 붙인 호칭이란다. 자식이 저러면 귀여워도 남편이 그러면 짜증이 난다는 것이다. 남자가 못나 보이기 시작하면 식충이의 사촌뻘쯤 되는 '삼식이'로 보이나 보다.

하지만, 그 삼식이라는 늙은 백수가 그 댁에 어떤 존재였었는데 저렇게 비아냥 조로 불러도 되는가 모르겠다. 저 백수는 전에 근면 성실한 밥벌이꾼이었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평생 구두 뒤축이 닳도록 밥벌이를 다녔다. 그러느라 마음대로 아플 자유조차 없었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꿈을 버렸고 살기 위해 항우의 사타구니를 긴 한신처럼 굴욕을 핥았다.

그때 저들의 아내는 사는 게 아무리 팍팍해도 남편을 위해 한결같이 새벽밥을 짓고, 고단한 육체를 누일 따듯한 잠자리를 깔았으며, 집을 나서는 등에다 대고 늘 진정을 담아 또 하루의 무사를 빌었다. 술기운을 빙자해서 하늘이라 흰소리를 쳐도 그게 다 바깥에서 허구한 날 죽어지내느라 언제 한번 속 시원하게 토해내지 못하고 쌓인 울분이 나온 헛장임을 간파하고 나는 그 하늘 아래의 땅입니다 하고 고분한 대꾸를 했었다.

그런 반려로 평생을 산 마누라가 대관절 무엇 때문에 하늘로 떠받들었던 서방님한테다 대고 삼식이라 조롱하며 깔깔댄단 말인가. 이제는 하늘이냐고, 발톱이 다 닳아빠진 늙은 호랑이라 두렵지 않아서인가, 무력해서 좀 찍어 눌러도 된다고 여긴 때문인가, 돈을 못 벌어와 만정이 떨어져서인가, 각방을 써서 그런가, 아니면, 늙어서까지 남편한테 죽어지낼 필요가 없다는 새삼스러운 깨달음 때문인가.

'삼식이' 소리를 입에 올리는 누구는 말할 수 없이 쓸쓸해 보이고, 누구는 측은하게 자조적이며, 누구는 처량하게 슬퍼 보이고, 누구는 뼈가 아프도록 고통스러워 보인다. 세상에, 한 이불 덮고 잔 세월이 몇십 년인데 어쩌다가 저 지경이 되도록 마누라 소박을 맞는단 말인가.

한데, 저런 삼식이 나무꾼의 늙은 선녀는 어떠할까 자못 궁금하다. 마음 놓고 지청구를 할 수 있어 통쾌할까? 그 잘나 보이던 나무꾼이 지금은 성가신 혹으로 보이나 모르겠다.

그쯤 해서 삼식이라 한다고 탓만 할 게 아니라 그러는 삼식이댁의 현실적 문제를 바로 본다면 조롱한다고만 여기지 못할 것이다. 하여 삼식이댁의 형편을 좀 들여다본다. 의외로 삼식이 부부가 사는 게 팍팍해서 삼식이 소리가 나올 만도 하다 싶다.

늙은 선녀는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하늘나라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나무꾼이 코납작이 삼식이 짓을 예사로 하기 때문이다.

저들 노부부는 각방 쓰기로 지낸 지 오래라서 부부 사이란 게 갈수록 지척이 천 리로 멀어질 뿐이다. 나란히 앉아 황혼 열차를 타고 가지만 포옹하고 싶은 욕망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일지 않으니 가뜩이나 썰렁한 황혼 열차는 그야말로 냉방 열차다. 물론 대화는 흉년이고 이야깃거리가 늘 궁하다. 도무지 유쾌한 실수나 즐거운 음모나 자극이 되고 약이 되는 사건이라고는 일어나지 않는다. 이미 바가지는 깨질 만큼 깨져서 더는 자극이든 관심이든 긁을 바가지가 없다. 그러니 일상에서 작은 행복으로 누릴 잔잔한 재미가 있을 턱이 없다. 일상은 그저 침묵의 판박이가 연속으로 흘러갈 뿐이다.

그런데도 삼식 씨는 눈치코치 없게도 애써 차려낸 밥상머리에 앉아 반찬 투정을 하거나 맛 타박하기를 예사로 한다. 그때마다 삼식이댁은 관절이 불거진 갈퀴손을 내려다보며 사혈(瀉血)시키듯 삭은 한숨을 죽여 토한다. 돈이 들거나 기술이 필요한 게 아닌데도 삼식 씨는 아둔하게도 칭찬에 인색하다.

거기에다 시시콜콜 잔소리를 해대거나 사소한 일에 짜증을 부리거나 벌컥벌컥 화를 낸다. 그 대상이 늘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옷을 감출 만큼 사랑했다는 선녀다. 그게 선녀는 슬픈 것이다.

무엇보다도 선녀를 정떨어지게 만들고 실망시키는 것은 나무꾼의 이기심이다. 선녀가 늘 삭신이 쑤시고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알면서도 나무꾼은 무엇 한 가지 도와주는 게 없다. 자질구레한 수발까지 들라 하고 운전을 시키며 바깥일을 도맡아 처리하란다. 설거지를 도와주는 건 고사하고 양말짝조차도 제대로 벗어 놓는 법이 없다. 늘 만사태평으로 드러 누워 텔레비전 채널을 자기 식성대로 돌려댄다. 경우가 궁하면 위압적으로 굴고 일이 불리할 때면 억지로 밀어붙인다. 이해와 관용이란 걸 잊어버린 듯이 실수를 윽박질러 탓하기 예사다. 자기 몸은 어디가 조금만 아파도 조바심을 쳐대며 병원으로 쪼르르 달려가면서 선녀가 시름시름 앓아도 걱정하는 눈길 한번 다정하게 건네지 않는다. 자기는 사업한답시고 큰돈을 날리고도 마치 가장의 권위를 자존심의 최후 보루로 지키려는 듯이 통장을 틀어쥐고 생활비를 다달이 쪼개주며 온갖 간섭을 다한다.

그 권한의 연장 선상에서 몸이 찌뿌듯한 날이면 나무꾼은 찜질방으로 달려가고 속이 허하다 싶으면 단골집으로 가 소주에 삼겹살로 포식하고 노래방에 들러 신나게 가무를 즐겨 기분 전환을 하고 온다. 그런 날 돌아오는 길에 붕어빵 한 봉지를 사들고 오지 않는다. 매사 자기 위주고 자기 기분만 좋으면 그만이다. 젊어서 선녀의 옷을 훔친 낭만과 배려란 찾아볼 수가 없다.

멋대가리조차 나날이 메말라가는 나무꾼이 울안에 갇힌 늙은 호랑이처럼 허구한 날 선녀의 인종의 미덕을 볼모로 잡고 정말 밥 줘, 놀아 줘, 용돈 줘 비비적댄다면 선녀가 지겨워 정나미가 떨어지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선녀의 시선이 곱지 않고 말이 짜증스러워지고 태도가 냉랭해지고 침실 사이의 거리가 더욱 멀어지는 판국에 삼식이 소리가 튀어나오는 게 당연하다.

저런 게 삼식이댁의 분명한 사실이라면 노후를 준비하는 예비 노인들이나 황혼 열차를 탄 나무꾼들이 결코 남의 일처럼 여길 게 아니다. 모름지기 삼식이라 불리지 않도록 미리 준비하고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호호야의 여생이라도 그 선녀를 어떻게 붙잡아 부부가 되었는데 처량하게 선녀한테 삼식이라 불려서야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