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어느 특별한 외출

며칠 전 북성로에서 '북성북성 마을 사진전'이라는 이름의 전시회가 열렸다. 그간 북성로에서 '근대건축물 리노베이션 사업' 기록 영상과 '북성로를 만나는 다섯 가지 방법'이라는 제목의 미니 다큐 등 다양한 영상 작업을 해 온 '영상서랍'이 기획했다. 사진과 영상에 등장하는 기술자 아저씨들에게는 정식으로 못 보여드렸다는 생각에, 그분들을 주인공으로 초대하는 자리를 만들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연말이라 정신없이 바빴던 터라 전시 준비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밤샘 작업과 주변의 도움으로 겨우 일정에 맞춰 준비를 마쳤다. 이제 아저씨들만 오시면 되는데, 10여 분을 앞두고 갑자기 전기가 나가는 사태가 발생했다. 시간은 점점 다가왔지만 두꺼비집은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러던 중 어디선가 불빛이 켜졌다. 휴대전화 불빛이었다. 반딧불이 같이 삼삼오오 모여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는 아저씨들의 얼굴엔 웃음이 번졌다. "이거 내가 아는 놈이네?" 하며 즐거워하는 그들의 얼굴을 보노라니 안심이 됐다.

다시 전깃불이 켜졌고, 오프닝을 시작했다. 아저씨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짧은 다큐를 감상한 뒤 축하 공연이 시작됐다. 여느 공연과는 조금 다르게, 올해 '북성로주민협업공모전'을 통해 북성로에 있는 재료로 만든 악기를 연주하고, 그 반주에 맞춰 '고향의 봄'을 합창했다. 안 그래도 좀 전 다큐를 보며 먹먹해져 있던 터라, 노래를 부르는 순간에는 하마터면 눈물이 날 뻔했다. 그래, 이곳은 그들에게 '제2의 고향'이라 할 만했다.

북성로 뒷골목의 많은 기술자들은 대부분 어릴 적 고향을 떠나 먹고살기 위해 북성로로 왔고, '시다바리'부터 시작해 겹겹의 시간들 속에서 기술자가 되었다. 매형이나 사촌형, 동네 친한 형을 따라 이곳에 왔다. 숙식만 해결해주면 그곳에 자리를 잡는 식이었다. 그로부터 수십 년, 비록 집은 여기저기 이사를 다녔어도 그들이 여전히 자신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북성로다. 이곳에서 가장 숱한 시간을 보냈고, 친구와 적을 만들었고, 함께 늙어간다.

'북성로 문화마을'이라는 이름 아래 북성로에서 이런저런 시도를 하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여기가 '마을'인가 하는 의구심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어느새 이곳이 고향이 되어버린 그들을 보면서, 대구라는 도시에 이런 마을이 또 어디 있을까 싶어졌다. 그들과 만나고 그들의 삶과 기술을 기록하고,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면서도, 그들을 어떤 '페이소스' 안에 가둬 대상화하고 있지 않았나 돌아보게도 됐다.

이곳에 있는 기술자들과 만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세계는 확장될 수 있다. 그들이 스스로 그 이야기를 만드는 주인공이 된다면, 그들의 외출 범위가 좀 더 넓어진다면, 북성로에는 분명 지금과는 조금 다른 풍경들이 빚어질 것이다. 그것은 사업이 아니라 삶으로, 기록이 아니라 구전으로 전승될 수 있는 종류의 것들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지금, 북성로를 생각할 때 그려보아야 할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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