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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감각적인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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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K는 다른 사람과 같은 방에서 잠자는 일이 없다. 자기 귀 때문이다. 함께 자는 사람의 코골이가 문제인 것도 아니고, 또 이를 가는 소리 때문도 아니다. 그는 옆 사람의 숨소리 때문에 잠자리에 들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쥐의 귀를 가졌다고나 할까? 이런 그를 주위에서는 별나다고 한다. 다른 친구 P도 있다. 그는 귀가 아니라 유난히 발달한 눈썰미 때문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찬사도 받으면서 별나다는 말도 함께 듣는다.

두 친구는 좀 극단적인 사례에 들 것이다. 하지만 사람마다 감각 기관의 발달 정도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그런데 감각이 좀 예민한 사람들에 대해 우리는 그저 별나다고 할 뿐이다. 실은 대부분의 예술가는 이런 차별화된 감각 기능 덕분에 그들의 재능을 도드라지게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이런 별난 사람들을 좋은 친구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나의 아둔한 감각을 보충해주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일이다. K를 데리고 무용 공연에 갔다. 공연이 강조하는 것은 음악과 소리라서 귀가 예민한 그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작품 속에서 특별한 언어를 갖지 않은 소리를 출연자가 표현할 때 나는 잘 알아듣지 못한다. 그런데 K는 그 소리를 놓치지 않고 들은 다음 일일이 해석해 내게 설명을 해 준다.

몇 년 전 P와 함께 관람한 공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P는 공연 내내 출연자들의 몸동작을 보며, 가령 곡선 위주로 표현하는 출연진과 직선 위주로 표현하는 출연진을 구분해 그들이 보여주는 세세한 동작들을 분석해줬다. 더 나아가 그들이 어떤 감정을 표현하는지 해석해줬다. 게다가 내 전공이라고 늘 자부심을 가져 온 의상 색깔과 질감에 대해서도 '매의 눈'으로 느낌과 의미를 분석해냈다.

최근에서야 나는 무용복을 디자인하고 재단을 할 때 시각 및 청각적 느낌을 어떻게 살릴지 고민한다. 참 재미있는 작업이다. 그러면서 언제부터인가 조지훈의 시 '승무'의 느낌은 물론, 김광균의 시 '설야'의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라는 시구의 느낌도 채취한다.

내가 만약 K나 P처럼 예민해진다면 오히려 생활을 하는 데 불편해하지는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보기도 한다. 그러나 내 고객들을 위해 보다 나은 무용복을 만들 수만 있다면, 그런 불편은 감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면 눈을 감고, 천의 종류에 따라 어떤 청각적 느낌을 낼 수 있는지 생각하며, 손으로 직접 천을 비벼보기도 한다.

이런 '감각적인 인간', 확실히 매력적이다. 만약 숨소리를 음악으로 들려주고 또 들을 수 있다면, 사랑이 싹틀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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