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은 자연의 대표적인 지표(sign)이다. 물이 흐르고 바람이 분다. 이 흐름은 곧 시간을 만들어 내는데, 흐르는 세월을 측정하여 시간이라 부른다. 모든 자연은 생성과 성장, 쇠락을 통하여 흐름의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인생도 생로병사(生老病死)를 통하여 흘러가는 존재를 경험하고 있다. 그래서 생존의 순응은 흐름을 따라 사는 것이다.
힌두이즘과 불가(佛家) 철학에서는 인생을 인연을 따라 움직이는 흐름의 존재로 묘사한다. 그런데 그 인연을 거슬러 멈추어 서려고 하는 데서 고통이 생긴다고 이해한다. 그것이 집(集)인데 곧 욕심이다. 흘러가야 할 것이 어느 곳에 머물러 서려는 것은 욕심이고 욕심이 지속성을 가질 때 집착이라고 불렀다. 인생이 이 집착에서 벗어나면 부처가 되고 그 깨달음을 얻는 것을 득도(得道)라 한다. 이른바 고집멸도(苦集滅道)의 원리이다. 힌두이즘과 불교는 매우 자연주의적인 철학을 갖고 있다. 자연의 성격을 따라 흘러가는 것을 막지 말고 그에 순응하는 것을 평화와 행복에 이르는 길로 본다.
구약 성경의 전도서에도 비슷한 말씀이 있다. '해 아래 새것이 없다'는 말씀인데, 이것은 만물의 흐름을 인정하는 것이라 본다. 내일이 어느덧 오늘이 되고, 그런가 하면 벌써 지나가 어제가 되어 버린다. 이런 흐르는 시간적인 속성을 갖고 세상을 보면 어느 것 하나 새것이 없다. 우리는 새해를 기다리지만 기다렸던 수많은 새해는 벌써 지나가고 이미 작년이라고 불렸었다. 새해에는 새것이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새것이라고 부를 때 이미 헌것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 전도서에서는 '헛되고 헛되나니 모든 것이 헛되다'고 했다.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색즉시공(色卽是空)이란 말도 비슷한 의미를 담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그 흐름을 타는 인생에 지혜라는 능력이 있다. 지혜는 흐름을 거스르려 하는 것이 아니라 그 흐름에 매듭을 만들어서 더 잘 타려 하는 것이다. 매듭을 지어서 앞과 뒤를 분간하고, 좌우를 나누어 방향을 세운다. 그래서 점을 선으로 이어가고 선을 면으로 만들며 면을 공간으로 확장하여 흐름을 담으며 흐름의 목적지를 세운다. 사도 바울은 흐르는 인생을 잡으려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으려고 자기가 성취했던 일, 곧 지나간 것은 잊어버리겠다고 했지만 자기 앞에 있는 것, 곧 다가올 일은 놓치지 않으려고 푯대를 두고 여전히 달려간다고 했다.(에베소서 2:13-14) 흐름을 따르면서 흐름을 선용하려는 것이 인간의 지혜이다. 인간의 지혜는 자기 인생이 그냥 흘러가도록 하지 않고 목적을 향해 나아가도록 함으로써 흐름 중에서도 목적지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 목적지는 흐름의 시원지(始原池)일 것이다.
인간은 달력을 만들었다. 달력은 시간의 흐름을 매듭지어 줌으로써 목적 지향이 되도록 흐름을 조절한다. 한 해를 보내고 다음 해를 맞으면서 매듭을 통하여 인생의 흐름을 반성하고 각오하고 준비케 한다. 매듭은 흐름을 막는 것이 아니라 그 흐름을 의미 있게 만드는 기능을 한다. 인간이 발견한 최고가 불을 발견한 것이라면 최고의 발명은 달력을 만든 것이 아닐까 싶다. 인간은 달력을 만들어 시간의 흐름과 삶의 흐름을 매듭으로 조절하고 조향하면서 시간의 흐름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시간 안에서 흐름의 역사를 기록해 왔다.
이제 오늘을 2016년의 마지막 날로 매듭을 만들자. 그리고 내일을 새해의 첫날로 매듭을 다시 풀면서 흐름을 조절하자. 하루하루를 이렇게 흐름과 매듭을 반복하면서 산다면 창조적 긴장을 갖고 매 순간을 의미 있게 변화시켜 갈 수 있을 것이다. 지혜자에게 오늘은 흘러가는 뒤의 것을 놓아주는 날이고 내일은 흐름의 시원지를 향해 나아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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