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침묵의 살인자' 고혈압

특별한 증상 없다고 놔두면 뇌경색·심근경색 위험

수축기 혈압 140㎜Hg 아래로 유지

목표혈압 도달할 때까지 병원 방문

경증이거나 심혈관계 질환 없으면

식사·운동·절주 등 생활습관 개선을

주부 조모(67) 씨는 벌써 10년째 고혈압약을 복용 중이다. 집에 혈압계를 사두고 수시로 재보지만 혈압이 늘 100/160㎜Hg를 넘나든다. 조 씨는 매일 산책도 하고 음식도 되도록 싱겁게 먹으려 노력하지만 혈압은 좀처럼 내려올 줄 모른다. 담당 의사는 조 씨에게 "혈압약 복용을 임의로 중단해서는 안 된다"면서 "산책을 하거나 주말에 등산을 하는 정도로는 혈압을 내리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고, 숨이 차는 정도의 유산소운동을 하루 30분씩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고혈압은 '침묵의 살인자'로 불린다. 특별한 증상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신체의 여러 장기에 치명적인 손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고혈압은 뇌경색이나 심근경색, 심부전, 만성콩팥병 등 생명을 위협하거나 심한 후유증을 일으키는 합병증을 겪은 후에야 깨닫는 경우가 많다.

◆혈압 노트 만들어 수시로 메모해야

혈압은 심혈관 질환의 위험을 예측하는 가장 효과적인 기준이다. 일반적으로 혈압은 수축기 혈압 140㎜Hg, 이완기 혈압 90㎜Hg 중 어느 한 가지라도 더 높을 때 고혈압 진단을 내린다. 정상혈압은 안정된 상태에서 측정한 수축기'확장기 혈압이 120/80㎜Hg 미만인 경우다.

혈압은 반드시 안정된 상태에서 2차례 이상 측정한 것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신체 상태나 주위 환경, 스트레스나 긴장 등에 따라 다르게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진료실보다는 안정되고 편안한 장소에서 측정한 혈압이 더 좋은 기준이 된다.

고혈압이 의심된다면 혈압 노트에 혈압을 잴 때마다 적어뒀다가 담당 의사에게 보여주는 것이 좋다. 최근에는 가정에서 편리하고 쉽게 혈압을 잴 수 있는 전자식 혈압계도 많이 이용된다. 가정용 혈압계를 구입할 때는 정확도가 떨어지는 손가락이나 손목 혈압계보다는 위팔 혈압계를 장만하는 것이 좋다. 팔을 감는 혈압계의 커프가 지나치게 넓으면 혈압이 낮게 측정되고, 너무 좁으면 높게 측정될 수 있으므로 본인의 팔 둘레에 맞는 커프 사이즈를 선택해야 한다.

한 번 고혈압 수치가 됐다고 해서 당장 혈압약을 먹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혈압이 140/90㎜Hg 이상이면 대부분 고혈압 약물치료 대상이지만 120/80㎜Hg~139/89㎜Hg 수준의 '고혈압 전 단계'이거나, 140/90㎜Hg~159/99㎜Hg의 '경증고혈압'이고 심혈관계 질환이 없다면 생활습관 요법 개선이 먼저 권고된다.

◆특별한 증상 못 느끼지만 합병증 치명적

고혈압의 90%를 차지하는 일차성 고혈압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가족력이나 연령, 식습관, 비만, 흡연, 고지혈증, 당뇨 등 혈관의 저항성과 관련된 다양한 요인이 작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차성 고혈압을 일으키는 만성콩팥병이나 콩팥혈관 질환, 혈압 상승을 유발하는 호르몬을 분비하는 종양 등은 특정 원인을 제거하면 정상혈압을 유지할 수 있다.

혈압이 높아도 특이한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때때로 고혈압과 함께 두통이 나타나지만 대개 잠에서 깨는 이른 아침에 뒤통수 부위에만 통증을 느끼고, 몇 시간 후에는 저절로 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밖에도 어지러움과 두근거림, 피로, 성 기능 장애 등이 나타나기도 한다.

혈관이 높은 압력에 오랫동안 노출되면 심뇌혈관계의 손상은 지속적으로 진행된다. 고혈압의 합병증은 뇌경색, 심근경색증, 심부전, 만성콩팥병, 말초혈관 질환, 고혈압성 망막증 등 치명적이거나,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는 경우가 많다.

혈압 관리의 목표는 140/90㎜Hg 미만을 유지하는 것이다. 노인의 경우 수축기 혈압 목표를 140~150㎜Hg로 다소 낮춰 잡아도 된다. 높은 혈압뿐만 아니라 확장기 혈압이 60㎜Hg 이하로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도 필요하다.

고혈압약은 연령 및 동반 질환 등을 고려하여 정하게 된다. 초기에는 목표 혈압에 도달할 때까지 자주 병원을 방문해 약제를 조정한다. 목표 혈압에 도달하고 안정적으로 혈압이 조절되면 병원 방문 횟수를 점점 줄이게 된다. 다만 매년 한두 차례는 신장 기능과 혈중전해질 검사를 하는 게 좋다.

◆생활습관 교정으로 건강한 혈압 유지

건강한 식사습관과 운동, 금연, 절주 등과 같은 생활요법은 고혈압약 1개 정도의 효과가 있다. 약물치료를 받고 있는 고혈압 환자도 생활요법을 병행하면 약의 용량과 개수를 줄이고 약의 효과를 높일 수 있다.

대한고혈압학회에 따르면 하루에 소금을 6g 이하로 제한하면 수축기 혈압은 5.1㎜Hg, 확장기 혈압은 2.7㎜Hg 낮출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나트륨 일일 권장량은 2천㎎으로 소금으로는 5g 정도다. 한국인의 하루 평균 소금 섭취량이 12.2g인 점을 감안하면 소금 섭취량을 하루 절반 이하로 낮춰야 한다는 의미다. 보통 피자 한 판에는 소금 31g, 짬뽕 한 그릇에는 소금 23g이 들어 있다. 김치나 찌개, 국, 젓갈, 라면, 마른안주 등에도 소금이 많이 들어 있으므로 피하는 것이 좋다. 채식 위주의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하면 수축기 혈압을 11.4㎜Hg나 낮출 수 있다.

규칙적인 운동도 고혈압에 도움이 된다. 운동은 수축기 혈압을 5㎜Hg 정도 낮출 수 있고, 심폐 기능 개선과 체중 조절, 혈중콜레스테롤 조절 등에 도움이 된다. 운동은 걷기와 조깅, 자전거, 수영, 등산, 에어로빅 등 유산소 운동이 좋다. 운동은 1주일에 5~7회, 숨이 찰 정도로 해야 한다. 아령 등 가벼운 근력운동도 1주일에 2, 3회 하는 것이 좋지만 역기 등 관절을 움직이지 않고 버티는 등척성 운동은 피하는 것이 좋다.

류재근 대구가톨릭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중증 고혈압은 생활요법만으로는 목표 혈압에 도달하기 힘들므로 고혈압약을 임의로 중단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도움말 류재근 대구가톨릭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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