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연재소설] 새들의 저녁 <7>-엄창석

그때 해성재 1층의 왼쪽 문이 열렸다. 아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모두 댕기머리를 하고 있어서 계승은 착시가 일어났나 싶었다. 신발을 찾느라 마루 끝에서 허리를 굽히거나 다리를 댓돌로 내리는 게 모두 여자애들이었다. 해성재가 여학교로 바뀌었나? 놀라운 일이었다. 우물이나 빨래터가 아닌 곳에서 여자애들이 모여 있는 건 상상하기 어려웠다. 방 안에서 아이들에게 둘러싸여있던 수녀가 저들과 같이 문 밖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 계승은 성당 앞으로 몸을 피했다. 왠지 자신을 알아보면 안 될 것 같았다. 세상은 아주 급변했다. 로베르 신부가 부민들에게 웃음거리가 되고 성안에서 쫓겨 난 게 겨우 10년이 되지 않았다. 계승이 해성재에 다닐 무렵에 십자 성모당이 신자들로 미어터질 정도로 민심이 바뀌었다. 지금은 여자애들이, 당연히 그럴 테지만 수리나 과학이나 서양음악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계승은 까마득히 하늘을 찌르고 있는 계산성당을 올려다보다가 곧장 달서교를 건넜다. 애란의 집이 있는 큰시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태양은 늦가을의 쌀쌀한 대기를 몰아내고 바닥에서 열기가 올라왔다. 버드나무, 왕버들, 보리수나무 아래엔 그늘이 짙었다. 큰시장으로 들어서자 초가 앞으로 툭 불거진 빈 진열대와 길가에 펼쳐놓은 긴 평상들이 보행을 방해했다. 곳곳에서 목수들이 임시 건물을 짓느라 나무를 켜고, 바닥에 기둥을 세웠다. 그러고 보니 대시가 열리는 게 열흘 뒤였다.

음력 10월과 2월에 대시(大市, 약령시)가 시작되면 도시 전체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시장으로 변한다. 대시가 성안 객사 앞에서 열리긴 해도 오히려 발 디딜 데가 없는 곳은 큰시장이고 성 밖의 골목들이었다. 양반 집과 외거노비 집을 빼면 모두 상가가 되는 것이다. 빈터에도 임시 상가가 들어서서 한적한 데가 없었다. 서울, 황해도, 청나라 상인들까지 끝없이 몰려들어 주막과 여관과 민가의 빈방을 차지했다. 봄에는 약재를, 가을에는 직물을 주로 거래하지만, 금속 그릇, 모피, 금은 보석, 미국산 문구 등 모든 물건들이 도시를 뒤덮는다. 대시는 한 달 동안 이어진다. 수백 마리의 마필과 수만 명의 사람들이 이 도시에서 한 달 가까이 머무는 것이다. 큰시장 어귀인 대구천(川)을 따라 말들이 마차에 엽전을 가득 싣고 서 있는데, 말의 목을 축이게 하려고 개울로 내려갔다 올라오는 하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지경이었다.

"국수 한 그릇 말아 줘요. 이번 대시가 언제지요?"

계승은 한 이불점 앞을 기웃거리다 옆에 있는 식점으로 들어갔다. 점심 때가 조금 지난 시간이라 주파(酒婆)가 손님이 비웠던 그릇을 씻고 있었다.

"이 달 16일요."

그를 힐끗 보던 주파가 계승이 등을 돌리고 앉자 더 말을 붙이지 않고 화로에 냄비를 얹었다. 상인들은 서력(西曆)에 익숙한 듯했다. 음력 10월 초하루가 서력으로 11월 16일이란 뜻이었다. 요즘 대시가 어떠냐고 물으려다 말을 바꾸었다.

"옆에 이불집이 상만이 가게 아니요? 장상만이요."

"이불집 총각 말이네. 저기 그릇집 있죠? 고 건너편이 상만 총각 가게예요. 여기선 보이지 않네. 작년에 그리로 옮겼어."

주파가 다시 계승을 보고 아는 체하는 눈치였는데 계승은 머리를 박고 국수를 먹었다. 계승은 쉰 살쯤 먹은 이 늙은이를 알고 있었다. 예전에 남문 객점에서 술을 팔다가 시장으로 들어왔다. 살결이 부들부들하고 궁둥이가 아주 팡파짐했다. 식탁에 행주질을 하며 뒤웅박 같은 젖가슴을 손님 눈앞에다 출렁대면서 "총각 뭐 드실까?"하는 통에 입맛이 싹 가시곤 했다.

뒤웅박 주파의 말대로 그릇집 건너편에 꽤 큼직한 이불가게가 있었다. 친구 장상만의 가게인 듯했다. 면포와 목화솜 이불이 잔뜩 쌓인 게 제법 돈을 번 품이었다. 장상만은 보이지 않고, 어린 애 하나가 의자에 앉아 식곤증이 겨운 듯 졸음과 싸우고 있었다. 열한두 살쯤 돼 보였다.

계승과 장상만도 큰시장에서 심부름꾼 노릇을 한 게 열 살부터였다. 가게를 지키고, 수표를 전달하고, 말을 구해오는 일 따위를 맡았다. 가게와 가게 사이, 점포상과 보부상 사이, 가게와 객주 사이, 큰시장과 사문진 사이를 들쥐처럼 재바르게 돌아다니는 심부름꾼이 없으면 시장은 마비되고 말 것이다. 이런 심부름꾼 아이들이 나중에 거상으로 커기도 하고 만석꾼이 되기도 했다. 대구 최고 부자들인 서씨와 장씨도 이곳 큰시장의 심부름꾼 출신이었다. 상설 5일장과 봄가을 대시의 규모가 심부름꾼을 거상으로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졸음에서 깬 아이의 말로는 장상만이 점심 전에 나갔는데 언제 돌아올지 알려주지 않았다고 했다. 아이에게 백동화 한 푼을 던져주고 가게를 나왔다. 계승은, 자신이 왜 애란의 집에 가는 시간을 자꾸 늦추는지 알 수 없었다. 남의 아내가 되었다 해도,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녀가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 없어 두려웠다. 그것은 열한 살 소녀로서 그녀의 사랑을 간직하겠다는 생각 때문만이 아니었다. 7년 만에 와본 도시가 소름이 돋도록 변해서 이것이 그녀에게 무슨 영향을 끼쳤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두려웠다. 그렇게 가게 주변을 머뭇대고 있는데 낯익은 얼굴이 다가왔다. 친구인 장상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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