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첫 대학 입학시험 제도는 1968년 12월 19일 치러진 예비고사다. 그전까지는 대학별로 단독시험을 치렀다. 국어, 수학, 과학, 사회, 영어, 실업 등 6과목 300점 만점으로 대학 정원의 1.5배수를 뽑아 대학별 입학시험에 응시할 자격을 부여했다. 첫해 11만2천여 명이 응시해 절반가량인 6만1천여 명이 합격했다. 예비고사는 대학 입학 자격시험과 유사하게 여겨졌고, 대학별 본고사는 주로 국어, 영어, 수학으로 실시됐다. 50년 전부터 영어와 수학이 대학교 합격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과목이었다. '수학의 정석'과 '정통종합영어'(성문종합영어)가 나온 것도 이 무렵이었다.
이후 예비고사는 본고사와의 병행 실시로 수험생 부담 가중, 과외 과열, 재수생 누적 등 여러 부작용이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1980년 등장한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이 제도는 사라졌고, 졸업정원제를 포함하는 대입 학력고사로 변경됐다. 이때는 대학별 본고사가 폐지되고 대신 학력고사 성적 50% 이상, 고교 내신 성적 20% 이상을 반영해 학생들을 뽑았다. 대학의 '좁은 문'을 넓히는 대신 공부 안 하면 졸업하기 어렵게 하겠다는 조치를 마련했다. 졸업정원제를 실시하면서 대학 정원을 대폭 늘렸다.
학력고사 시대는 '입시 도박' '4당 5락' 등의 신조어가 유행했다. 어떻게든 경쟁률이 낮은 학과나 정원 미달 학과를 찾아 원서 접수 마감 몇 분 전까지 버티며 접수창구를 전전했다. 실제로 터무니없는 점수로 서울대 법대에 붙기도 했고, 의예과 등에서 미달이 나오기도 했다. 학력고사는 암기력 시험이었다. 기미독립선언문이나 훈민정음을 외워야 했고, to 부정사 용법을 익히기 위해서 '성문'을 뜯어먹을 정도였다. 또 '수학도 암기'라는 말은 그 시대의 진리로 통했다. 누가 더 교과서를 달달 외우느냐, 누가 더 잠을 줄여서 문제를 더 많이 푸느냐가 입시의 관건이었다. '4시간 자면 합격하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1993년을 마지막으로 학력고사는 '주입식 교육의 주범'이라는 주홍글씨를 달고 퇴장했다.
1994학년도 입시부터는 전혀 새로운 유형의 문제들이 출제됐다. 지금의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다. 영어에 도표와 그래프가 나오고, 계산을 요구하던 수학도 개념이나 공식을 끌어와 수험생들의 사고력과 응용력을 테스트했다. 수능은 단원끼리, 과목끼리 융합하고 확장하는 통합교과의 성격도 가진다.
대학은 이러한 수능을 기본으로 해서 선발 전형을 운영하고 있다. 최저학력 기준, 내신 성적, 학생부, 논술, 적성 등 다양한 전형 요소를 반영한다. 지금은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대세다. 인성, 자질, 전공 적합성 등을 종합해서 대학의 인재상에 맞는 학생을 선발하는데, 이 학종이 금수저 전형이라고 비판한다. 적지 않은 사람이 공평하게 '성적순으로 뽑는' 학력고사 시절로 돌아가자고 말한다. 시험 한 번으로 인생이 결정되고, 성적을 비관해 목숨을 스스로 버리던 '그 시절'을 잊었단 말인가.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마침 정권이 교체될 시점이기에 대입 제도가 또 바뀌리라고 생각한다. 당장 7월이면 수능의 존속 여부가 결정된다. 모든 영역이 절대평가로 바뀌어 자격고사로 전환될지, 아니면 다른 '묘안'이 나올지 학부모들은 조마조마하다. 뭐가 또 어떻게 바뀔지 불안한 것이다.
1969학년도 예비고사부터 2018학년도 수능까지 대입 50년 중 크고 작은 제도상의 변화가 40차례 있었다. 대입 제도의 평균 수명은 고작 1.25년인 셈이다. 지금까지의 변화가 잘못된 것인지, 아직도 변화가 부족한 것인지 답답할 지경이다. 그 옛날 예비고사 시절부터 입시 제도는 고교 교육 정상화, 대학 교육에 적합한 인재 선발을 목적으로 이뤄졌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그 가치는 똑같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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