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털보기자의 이슈 털기]<37>-잊혀진 TK 두 정치인, 5선 강재섭과 4선 이한구

5선 의원 강재섭(대구 서구) 그리고 4선 의원 이한구(대구 수성갑).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6일 새벽 1시30분에 불현듯 두 정치인이 떠올라 털보기자의 칼럼 주제로 도마에 올려본다. 개인적으로는 서울정치부 기자 시절에 좋든 싫든 짧은 인연을 맺었던 분들이다. 칼럼 성격상 호칭은 생략하기로 한다. 강재섭은 2007년 대선 출마 당시 당내 경선에서 이명박-박근혜-손학규에 이어 4위를 머물렀다. 당시 1~3위 세 후보의 장'단점을 분석한 내부문건을 기자가 보도했을 때, 기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자신은 잘 모르는 내용'이라고 했다. 당시 문건을 기자에게 넘겨줬던 보좌관은 타 언론에 뒷수습을 하느라 애를 많이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과연 강재섭은 몰랐을까?

이한구는 '화재는 119, 경제는 219(이한구)'라는 카피로 경제전문가임을 피력하며, 당내 정책 브레인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던 때다. 기자가 처음 의원실에 들러 인사를 하자, '기자도 공부를 해야 한다. 수준높은 기자가 되라,'고 조언을 해줬던 말이 아직도 뇌리에 박혀있다. 또다른 에피소드도 생각난다. 개인적인 부탁이 있어서 점심식사 자리를 빌어 얘기를 꺼냈는데, "그건 아예 안됩니다."라고 딱 잘라 말했다. 단칼에 잘라버리니, 미련이 사라져 좋기는 했지만 정(情)은 뚝 떨어졌다.

◆안타까운 두 분의 정치행보

강재섭은 지난 대선 전후로 급격한 이미지 추락을 막지 못했고, 이한구는 이번 총선에서 공천 실패의 장본인이 되어 버렸다. 둘 다 아까운 정치인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현실에서 별로 좋지 않은 기억으로 잊혀진 과거의 정치인으로 전락했다. 대구경북을 위해서 큰 일을 할 분들이었는데, 이젠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게 됐다. 사실 대구의 입장에서는 배신감마저 들기도 한다.

대구 서구 구민들은 강재섭이 5선 의원이 되기까지 의리있는 유권자들이 팍팍 밀어줬는데, 서구는 대구의 제일 낙후된 지역이 되어 있다. 5선 의원으로 당 대표가 되고 나서는 당내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 대신 이명박 후보 측과 타협하는 모습에 크게 실망했다. 2011년 4월 보궐선거(분당)에서 손학규 전 의원과 맞짱을 떴을 때, "분당 토박이 강재섭"이라는 캐치 프레이즈에 서구 구민들은 또한번 분루를 삼켜야 했다. 이후 강재섭은 친이'친박 양쪽 모두에 환영받지 못하는 뒷방 원로 정치인의 길로 향했다.

이한구의 처신은 더 아쉬움이 크다. 기자가 기획취재팀장 시절 당시 지역구 방문횟수를 조사했을 때, 꼴찌였을 뿐 아니라 집 주소도 대구가 아닌 수도권이었다. '대구에 방을 아예 뺏다'는 얘기를 보좌관으로부터 들었을 때는 허탈감마저 들었다. 스킨십이 뛰어나고 여러 모로 좋은 평가를 받던 야당의 김부겸 의원과의 맞대결에서도 수성갑 구민들은 이한구를 지켜줬다. 그 은혜에 대한 보답(?)일까. 지난 총선에서 불출마 선언 이후 공천을 엉망으로 해서 여당을 참패를 이끌었다. 사실상 지역민의 성원에 대한 은혜를 원수로 갚은 셈이다.

두 분 모두 대선이나 총선 이후에 국무총리 물망에 올랐다는 후문을 듣고 나니, 더 꽤심한 마음마저 든 것 기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두 분의 불행이 박근혜의 실패의 단초

친이와 친박은 사실상 10년 전부터 '개와 고양이', '물과 기름'처럼 화합하기 힘든 성향이었고, 같은 당에 있었지만 확실히 서로 다른 계파였다. 2007년 대선 경선 때도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한 친박들은 '이명박 전 대통령을 불법'탈법의 온상'으로 치부하며, '전과 14범 이명박 X-파일'을 들먹였다. 친이 세력 역시 '최태민 파일'을 박 전 대통령의 치명적인 약점으로 알고 있었으며, 이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예견하고 있었을 지 모른다. 결국 집권여당의 두 계파(친이와 친박)는 TK를 핵심으로 하고 있는 대한민국 보수세력의 분열과 실패라는 참혹한 길로 치킨게임을 했다.

강재섭도 이한구도 대구경북을 생각했다면 분명 잘못된 선택을 했다. 먼저 강재섭의 경우를 보자. 2006년 당 대표 경선에서 친박의 좌장 강재섭과 친이의 좌장 이재오가 양강구도를 형성하며, 팽팽한 대결을 할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재오 전 의원의 연설 도중 자리를 떴다. 이 액션은 당원들에게 강재섭을 밀라는 큰 메시지로 받아들여졌고, 결국 강재섭은 당 대표에 당선됐다. '정치인의 의리'라는 덕목을 생각한다면, 강재섭은 당 대표가 된 이후에 대선 경선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 편에 서는 것은 결코 TK의 입장에서는 배신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토사구팽일까. 친이 세력은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도 강재섭은 특별히 챙기지 않았다.

이한구는 무엇이 아쉬워, 대구경북의 민심을 저버린 공천 만행을 저질렀을까. 같은 당에서 또 TK의원이자 당내 경제전문가로 오랫동안 한솥밥을 먹은 유승민 의원을 결국은 찍어내듯이 '배신자'의 낙인을 찍었고, 이는 민심의 역풍이라는 대위기에 직면하고 말았다. 이는 본인의 불행이기도 하지만 박근혜 정권의 실패이자 탄핵의 빌미를 제공하는 단초가 되고 말았다. 집권여당은 대통령이 소속된 당으로 국정의 위기가 왔을 때, 적극 방어하고 보호해야 할 의무도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국민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고, 헌정사상 첫 탄핵 대통령이 되어 현재는 서울구치소 구금돼 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이 새벽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치소에서 깨어, 두 정치인을 떠올린다면 자신의 신세처럼 서글픈 생각이 들 것이다. TK 지역민들 역시 훌륭한 정치적 DNA를 갖고 있는 이 두 분이 2007년 대선과 2016년 총선에서 결정적인 선택을 두고는 혀를 끌끌 차는 분들이 더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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