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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구병의 에세이 산책] 꽃 피는 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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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꽃이다. 산과 들, 논둑 밭둑 어디서나 꽃이 피어나고 꽃보다 더 이쁜 새순이 돋는다. 아프다. 온 산과 들에 살이 터져나가는 소리가 가득하다. 한겨울 추위에도 부스럼 나듯이 여린 가지 끝에서 조금씩 커져가던 겨울눈들이 잎으로, 꽃으로 입을 벌리고 눈을 뜬다. 살갗을 찢고 나오느라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꽃 피고 움 돋는 봄철은 시골 늙은이들이 저승길 떠나는 철이기도 하다. 봄에 농사를 시작하려면 사람도 몸에 힘을 끌어모아야 하고 그 힘으로 떨쳐 일어서야 한다. 그러나 평생을 두고 고된 일에 시달릴 대로 시달려 진기가 빠져나간 노인들 몸에는 새 피가 돌지 못한다. 터뜨려야 할 힘이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일어서다 말고 풀썩 주저앉고 자리에 누워 숨을 거둔다. 우리 마을에도 요 몇 해 사이에 어르신들이 여럿, 세상을 떴다.

새로 움 돋는 순들의 아픔, 벙그는 꽃망울의 아픔에 곁들여 땅을 지키다 가신 어른들을 지켜보는 자식들과 이웃들의 아픔을 딛고 봄이 온다.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이렇게 노래하던 시인이 있었다.

이 땅에 봄이 왔다. 그러나 봄이 봄 같지 않다. 평화로운 '명예혁명'이라고, 동북아 끝자락에 매달려 있는 이 땅의 남녘에서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부럽고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그런 경험이 없는 많은 나라가 놀라고 있지만, 비명에 간 전 대통령이 살던 봉하 마을은 아직도 칼바람이 불고 있다. 생때같은 자식을 가슴에 묻어야 했던 세월호 부모들의 피눈물이 아직 가시지 않고 있는 이 잔인한 사월에 남편 잃고 아비 잃은 가족들의 한 맺힌 가슴에 다시 못질을 하는 저들은 누구의 어미 아비고, 누구의 아들딸인가.

사람의 숨결도 바람이다. 따뜻하다. 따뜻해야 한다. 그런데 저들의 입김은 따뜻하지 않다. 무서운 일이다. 흡혈귀의 입김도, 좀비나 강시의 입김도 저러지는 않으리라. 저렇게 모질고 찬바람이 돌지는 않으리라. 한반도 문제는 '사드 배치'로 해결될 수 없다. 남북이 서해에서 동해에서 벌이는 무력시위로 해결될 일도 아니다. 봄바람이 남에서 북으로 불어가면서 '삼천리금수강산'을 꽃으로, 새순으로 뒤덮듯이, 닫혔던 '개성공단' 문을 다시 열고, '이산가족'들이 마지막 눈을 감으면서까지 꿈에 그리던 금강산 가는 길을 다시 열어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입 밖에 내고도 실천에 옮기지 않았던, 휴전선 안에 보금자리를 튼 남녘과 북녘의 젊은이들이 함께 어울려 사는 평화마을의 꿈을 현실화시켜야 할 때다. 지금 '민통선' 안에는 수백 수천만 평의 땅이 지뢰가 깔린 채로 버려지고 있다.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어 길거리를 헤매는 젊은이들이 평화를 지키고 '우리의 소원'인 통일을 이루기 위해 총칼 들던 손으로 삽과 호미를 쥐고 달려가는 모습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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