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과 사진이 선명한 학생증 하나, 카드 2장, 일회용 콘택트렌즈, 그리고 한쪽이 거무스럼하게 변색된 1만원권 지폐 5장….
지난달 25일 자 매일신문 12면에는 조그마한 흑백 사진 한 장이 실렸다. 세월호 수색 과정에서 발견된 단원고 2학년 고 백승현 군의 소지품들을 모은 사진이었다.
수학여행을 떠나는 날 아침. 출근하던 아버지는 현관에 나와 인사하는 아들에게 만원짜리 몇 장을 꺼내 손에 쥐여 주었다. "짐은 제대로 잘 챙겼나. 잘 다녀오너라. 이걸로 친구들하고 맛있는 것 사 먹고 재미있게 놀아라. 우리 아들 이제 며칠 있어야 보겠네." 아버지는 출근을 했고, 아들은 오후 여행 가방을 끌고 학교로 향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아버지는 더 이상 아들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아들의 여행 가방은 1천103일이 지나서야 다시 부모들에게 돌아왔다. 주인을 잃어버린 채.
그 사진을 보는 순간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졌다. 고등학교 2학년에 다니고 있는 아들의 얼굴이 오버랩되었다. 3년 전 그날 어두운 바닷속으로 떠나버린 그 아이들의 나이가 지금 내 아들과 같지 않던가. 희생자 가족들이 겪었을 단장(斷腸)의 아픔이 전해져 오는 것만 같았다.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지난 주말 아들과 함께 목포로 향했다.
노랑의 물결이었다. 끝없이 내걸린 플래카드와 현수막, 배너…. 목포 시가지는 그렇게 물들어 있었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도시에서는 모든 시민들이 조용하게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기리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목포대교를 건너 세월호가 거치된 신항만 부두 쪽으로 향하자 이번엔 수많은 자동차들이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 방문객들이 대부분이었다. 추모객들은 노란 리본에 저마다의 염원을 담은 글을 써 세월호가 바라보이는 철망에 묶었다. "모두들 꼭 돌아오길." "잊지 않을게요."
액자에 내걸린 사진 속에서는 학생들이, 선생님들이, 아버지가, 아들이 모두 환하게 웃기만 하고 있었다. 세월호와 사람들 사이 철망에 가득히 묶인 노란 리본들 위에서, 컨테이너 박스로 만든 조그마한 전시실에 걸린 추모 작품들 속에서 뭔가 모를 처연함이 밀려왔다. 휴일임에도 쉬지 않고 '내 자식을 찾는다는 심정으로' 수색에 여념이 없는 현장을, 철망 너머 먼발치로나마 한참이나 바라보다 발길을 돌렸다.
대선 기간 많은 후보들도 이 현장을 찾았다. 그리고 많은 약속을 했다. 모두가 한목소리로 미수습자 전원이 가족의 품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국민들은 그런 약속을 한 후보 중 한 사람을 선택했다.
어제 우리는 문재인 대통령을 우리의 새 지도자로 맞이했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문 대통령이 취임한 이날 세월호에서 사람 뼈로 추정되는 뼈 2점이 발견되었다. 해저 수색에서 1점이 발견된 적은 있지만, 선내 수색에서 사람 뼈로 추정된 유골이 나온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가족들의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문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세월호 가족들과 국민들에게 약속을 했다. 팽목항에서, 목포신항에서,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는 대통령이 되겠다. 이 땅에 봄이 있는 한, 4월이 있는 한 세월호 아이들을 잊지 않겠다"고.
모든 미수습자가 가족 품으로 돌아갈 때까지 문 대통령이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기를 바란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기 이전에, 자식을 가진 한 사람의 부모로서 세월호 가족들의 아픔을 기억하는 대통령이 되리라 믿는다. 세월호 가족들과 나아가 모든 국민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대통령이 되리라 믿는다. 지난 3년 우리 국민 모두가 얼마나 많이 아팠는가.
광화문 광장을 지키고 있는 한 단원고 학생의 부모는 말했다. "통합 대통령이 되어서 이 나라에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촛불을 들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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