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푸시킨과 박경리

알렉산드르 푸시킨은 '러시아 국민 문학의 아버지'로 불릴 만큼 현대 러시아에 큰 족적을 남긴 문호다. 막심 고리키가 푸시킨을 두고 '시작의 시작'으로 평가한 것이나 투르게네프가 '푸시킨 이후의 작가들은 그가 개척한 길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는 말에서 러시아 문학에 끼친 푸시킨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푸시킨은 귀족 가문 출신이다. 모계로는 아프리카의 피도 섞여 있다. 노예로 팔려왔다가 표트르 대제의 측근 장군이 된 아브람 간니발이 그의 외증조부다. 그는 아비시니아(현 에티오피아) 출신으로 푸시킨의 곱슬머리와 검은 피부도 그 영향이다. 푸시킨은 미완성 소설인 '표트르 대제의 흑인'에서 외증조부 이야기를 담아냈다.

지난 1997년 10월 러시아 일간지 프라우다는 푸시킨 가문의 부계 혈통이 600년 만에 끊겼다고 보도했다.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후손인 그리고리 푸시킨이 사망하면서 마지막 남은 푸시킨의 부계 혈통이 단절됐다는 뉴스였다. 1837년 푸시킨 타계 이후 160년 만의 일이다. 그렇다고 푸시킨의 혈통이 완전히 끊긴 것은 아니다. 모계 후손은 300명가량 남아 있다. 상당수가 러시아가 아닌 외국에 거주 중인데 '제2의 피아프'로 불리는 엔조 엔조(Enzo Enzo)도 후손이다. 본명이 코린 테르노프제프인 엔조 엔조는 파리 태생의 샹송 가수로 국내에도 팬이 많다.

푸시킨은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예프게니 오네긴' '대위의 딸' 등 수많은 작품이 번역돼 있다. 러시아 문화'교육센터인 '뿌쉬낀 하우스'도 설립돼 있다. 2013년 방한한 푸틴 대통령이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뜰에 세워진 푸시킨 동상 제막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며칠 전 '토지'의 작가 박경리 동상이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대학 내에 세워진다는 보도가 나왔다. 러시아에 한국인의 동상이 세워지는 것은 처음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에 맞춰 제막식이 있을 계획이라고 한다. 서울 푸시킨 동상과 마찬가지로 비영리단체 '한'러 대화(KRD)'가 주도했다.

푸시킨의 문학이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준 것처럼 '토지' 등 우리 문학작품이 러시아에서 번역'출간돼 널리 읽힌다면 서로를 이해하고 친밀감을 높이는데 큰 도움이 된다. 이해가 엇갈리는 국제정치 무대에서 마찰과 긴장을 누그러뜨리는데 이런 '소프트파워'의 효과는 크다. 한국과 러시아가 이런 문화 자산을 하나씩 늘려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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