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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 밥이나 한번 먹자고 할 때 (문성해 지음/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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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날이 시가 되고 노래가 되는

이영철 작
이영철 작 '사랑, 봄꽃 시인'

밥이나 한번 먹자고 할 때 (문성해 지음/문학동네)

눈길 주는 곳마다 신록이다. 푸름이 짙어 가는 그만큼 날씨도 무더워지고 있다. 빙과류가 수시로 생각나는 계절이 오고 있는 것이다. '설레임'이라는, 짜서 먹는 얼음과자가 있다. 그 이름 때문에 마트 냉장고의 많은 빙과류 중에 사람들 눈에 쉽게 잡히는 이 '설레임'과, 그것에 시선을 뺏기고 마는 사람들의 마음 저변을 지나치지 못하는 시인이 있다. 문성해 시인이 그렇다.

"……이토록 차고 투명한 것/ 이내 손바닥이 얼얼해서/ 금세 놓아주어야 하는 것// 얼얼한 심장 한쪽이/ 설레는 무게는 딱 이만하고/ 그것을 한 덩이로 얼리면 딱 요만하고// 너는/ 여름을 최초에 얼린 이처럼/ 열로 들뜬 나의 손안에/ 한 덩이 두근거림을 쥐여주고/ 쓰레기통에는/ 설렘을 다 짜낸 튜브 같은 심장들/ 함부로 구겨져 버려져 있다."(69쪽 「설레임」 부분)

위 시집에 실린 이 시는 시인 내면의 웅얼거림도 아니고, 가슴 찢는 포효도 아니다. 현학적이거나 몇 겹씩 꼬인 수수께끼 같은 구절도 없다. 빙과 '설레임'에 감정 '설렘'을 잘 투영하여, 하나의 시제로 경계 없이 끌고 갈 뿐이다. 빙과 '설레임'을 보던 독자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한때 두근거림을 쥐여주던 그 감정이 자신에게도 있었음을 더듬게 된다. 이제는 그 감정을 다 짜낸 튜브 같은 자기 심장을 생각하게 된다.

이처럼 생활 주변에서 누구나 만날 수 있는 일들을 깊고 세밀한 시선으로 길어 올린, 이런 시편들로 빼곡한 이 책은 문성해 시인의 네 번째 시집이다. 1998년과 2003년에 각각 매일신문과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시인은 일상의 소외된 것들을 따스하게 그려낸다는 평을 들어온바, 이 시집에서도 이를 잘 보여준다. 사소한 것들에 눈길 주고 마음 보태어 옆 사람에게 말 건네듯 조곤조곤 읊조리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는 잘 벌고, 잘 먹고, 잘 나가는(해외로) 이야기로 넘쳐난다. 돈과 무관한 일에 몸과 마음을 기울이면 무능한 현실 부적응자로 치부되기 일쑤인 이런 분위기 속에서 시인은 '대책 없이 막 사는 인간'(「사나운 노후」)이 된다. 그럼에도 문성해 시인은 자신만의 시선과 언어로 세상을 보고 해석하는 일에 무엇보다 힘을 쏟는다. 그가 들려주는 노래에서 독자들은 생각지 못한 무언가를 만날지도 모른다.

초여름과 새 지도자의 열기가 대지를 달구는 이즈음, 나날이 시가 되고 노래가 되어도, 먹고사는 일에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뒤처진 인간이 되지 않는 사회를 꿈꿔 본다. 함께 꿈꾸고 싶은 이들이 이 시인의 감성과 사유를 맛보는 즐거움도 함께하면 좋겠다. '빨갛고 뾰족한 끝이 먼 어둠을 뚫고 횡단한 드릴'(「조그만 예의」)인 고구마나, '빙하기도 산사태도 지나며 돌이 짓는 옷'(「돌이 짓는 옷」)에 대한 숙연함도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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