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 하!"
3일 대한민국연극제 개막식 식전 행사가 열린 코오롱야외음악당에 한 화가가 거친 숨소리를 내며 붓질을 하고 있었다. 빗자루만 한 붓이 창문만 한 화포에 획선 긋기를 여러 번, 캔버스엔 세 마리의 말이 묘한 구도로 엉켜 있는 모습이 나타났다.
한국의 잭슨 폴락(미국의 유명한 액션 페인팅 화가)이라 불리는 이성근 화백의 드로잉 퍼포먼스였다. 이 화백은 "연극은 우리의 압축된 삶을 무대에 올린 것"이라며 "대구에서 연극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왔다"고 했다.
사실과 추상을 넘나드는 현대미술의 거장 이성근 화백. 그의 유명세는 해외에서 더 빛난다. 뉴욕 UN본부, 영국 왕실, 미 국방부(펜타곤), 파리 에르네스관에 그의 그림이 걸려 있고, 필리핀 두테르테 대통령이 취임 선물로 '가장 한국적인 그림'을 원했을 때 최종 낙점된 것이 이 화백의 '군마'(群馬)였다.
화려한 전시회 이력도 그의 국제적 명성을 가늠케 한다. 미국,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 10개국에서 그간 50여 회 개인전'초대전을 열었다. 전시회 때마다 그의 퍼포먼스는 화제가 되었다. 기행에 가까운 파격적인 행위예술은 각국 화단, 언론에 화제가 되었고 '한국의 잭슨 폴락'이라는 별칭도 이때 붙여졌다.
개막식 때 이 화백이 그린 건 세 마리의 말이었다. 캔버스에 뿌려진 거친 선은 강한 기운을 내뿜으며 관중을 화폭 속으로 끌어들였다. 드로잉 작업을 참관한 권영진 대구시장은 "그림에서 강한 기운, 에너지가 느껴진다"며 "말들이 캔버스를 박차고 나올 것 같은 생동감이 든다"고 말했다.
이 화백은 "말이 세 마리인 것은 '3'이 정반합(正反合)으로 나아가는 완벽한 숫자이기 때문"이라며 "배우, 관객이 연극을 통해 소통을 이루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 중 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소리가 하나 있었다. 바로 이 화백이 붓질 중에 내뱉었던 기합이다. 붓이 갈겨질 때마다 신음처럼 뱉는 소리는 시민들을 묘한 판타지로 이끌었다.
관중의 호기심과 달리 본인은 이런 사실을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전 그냥 감성이 충만해질 때 느낌을 뱉어냅니다. 몰입하다 보면 나를 토해내고 싶을 때가 있어요. 혼자 작업을 할 때도 어느 순간 기합이 터져 나오곤 합니다. 특히 대중 앞에서 기합을 지르면 관중과 서로 통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이런 무의식과 자의식을 넘나드는 정신세계는 그의 작품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형식과 장르를 고집하지 않고 소재와 제재까지 넘어 감성이 이끄는 대로 그만의 그림 세계를 채색(彩色)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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