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보훈 없는 호국은 없다

"지금부터 탑승을 시작합니다. 일등석, 비즈니스석 장애인, 군인들은 먼저 비행기에 탑승해 주시기 바랍니다." 미국의 공항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안내방송이다. 또 일등석, 비즈니스석에 빈자리가 있으면 승무원은 제일 먼저 이코노미석에 있는 군인을 찾아가 일등석에 빈자리가 있으니 자리를 이동하라고 권한다. 우리 정서로는 장애인, 일등석 승객과 함께 신체 건강한 군인이 먼저 탑승하라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군인들이 게이트에서 빠져나오면 공항에 있는 모든 승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향해 기립박수를 보낸다. 공항식당에서 식사라도 하면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다가와 "당신의 희생 덕분에 우리가 편안히 잘 산다"며 밥값을 계산하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또 군인들이 마트에서 군인신분증이나 제대증만 제시하면 그 어떤 결제 카드보다 높은 할인 혜택을 받는다. 이러한 일상의 '보훈문화'가 세계 최강의 미군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2002년 벌어진 서해교전 전사자들은 군인연금법에 전사(戰死) 항목이 없어 공무상 사망자로 처리되는 바람에 당시에는 평균 3천900만원 정도의 공무보상금만 받기도 했다. 지난 2015년 북한군 목함지뢰 도발로 희생된 국군장병의 치료과정에서 공무수행 중 부상한 군인이 민간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경우 진료비가 최대 30일만 지원된다는 규정이 밝혀져 사회적 논란이 되기도 했다. 자유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듯,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우는 호국정신도 공짜가 아니다. 호국에 걸맞은 보훈이 전제되어야 진정한 호국도 실천이 가능한 것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호국을 향한 그들의 희생과 공헌에 비해 보훈 수준이 미미하다. 보훈대상자가 걸맞은 예우를 받을 때 그들은 국가로부터 소외되고 있지 않음을 느끼게 되고, 국가를 위해 희생한 것을 자랑스러워할 것이다. 또 유사시 국가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을 것이다. 호국의 빚은 반드시 보훈으로 갚아야 더 큰 호국으로 다시금 돌아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호국과 보훈을 말하면 칠곡군을 빼놓을 수 없다. 칠곡군은 6'25전쟁 당시 수많은 젊은이가 자유와 평화를 위해 초개와 같이 자신을 던져 시산혈해(屍山血海)를 이루었고,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우리나라 대표적 호국평화의 도시이다. 이런 칠곡군은 보훈의 가치를 대한민국에 전파하는 역사의 소임을 다하고자 참전용사의 참전수당을 경북도 내 최고 수준으로 인상했고, 자치단체 최초로 대학교수와 보훈전문가로 구성된 보훈자문위원회를 구성해 선진화된 보훈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또 연간 20만 명의 유료관람객이 방문하는 칠곡호국평화기념관을 비롯해 한미 우정의 공원, 호국평화공원 등 보훈 관련 하드웨어를 마련하고 낙동강세계평화 문화 대축전, 칠곡 스토리텔링대회 등 문화행사를 통해 보훈의 가치를 드높이고 있다.

하지만 보훈을 위한 노력이 칠곡군만으로는 부족하다. 모두의 관심과 동참으로 이어질 때 지금보다 더 성숙한 호국정신, 보훈문화를 기대할 수 있다.

보훈 없는 호국은 없다. 그들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를 생각하기에 앞서 우리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우리의 의무를 생각하는 6월이 되기를 기대한다. 호국보훈의 달에만 '보훈'을 유행가 가사처럼 떠들지 말고, 미국처럼 365일 일상의 삶과 생활 속에 보훈의 가치가 녹아들 수 있도록 국가적인 노력을 촉구한다. '호국보훈'이 아닌 '보훈호국'으로 바꾸어 사용하면 어떨까, 대한민국 대표 호국평화의 도시 자치단체장으로서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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