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데이인 1971년 12월 13일. 시각은 오전 9시로 정해졌다.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야영에서 일어나 판초 우의를 연결해 만든 조별 천막을 거두며 조용하게 출동 준비를 갖추었다. 어둠 속에 분배된 C레이션 한 끼도 제대로 다 비우지 못하고 깡통을 쓰레기통으로 던져 버렸다. 긴장한 탓인지 식욕이 없었다.
날이 밝는 대로 장비들을 재점검한 뒤 모두 조용하고 엄숙히 질서를 지키며 완전군장을 한 채 헬기장으로 향했다.
말없이 배낭 무게에 눌리며 걸음을 옮기는 동료들의 표정에서 숙연함이 느껴지고 발자국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고 있었다.
우리 중대의 랜딩(Landing Zone) 번호는 3번이었다. 먼저 오늘 우리가 도착할 랜딩 지점의 안전을 점검하기 위해 정찰 헬기가 떴다. 뒤이어 두 대의 무장 헬기인 건십(Gunship)이 멀리 아스라이 구름에 싸여 있는 침묵의 다반 계곡을 향해 날아갔다. 착륙 지점 주위에 적이 접근하는 것을 막는 위협사격을 가하기 위한 출동이었다. 아홉 시가 되자 연대장이 일일이 사병들에게 악수하며 어깨를 두드려 주고 무사를 빌어주는 환송을 받으면서 헬기 한 대에 전투병 7명씩 여섯 대에 분승해 랜딩 번호 1번인 12중대 요원부터 차례로 적지에 투입되기 시작했다.
오늘 우리는 이 다반 계곡 속에 은거한 베트콩을 색출해서 이 지역 일대를 평정한다는 임무를 갖고 투입된 것이다. 소수의 적들은 천연적인 장애물로 은폐된 정글 속에 있고 방대한 밀림에서 이들을 찾는 우리는 몇 개 중대가 오로지 가느다란 한 줄의 통로를 뚫어 수색을 해서 이들을 찾아내서 섬멸해야 하는 것이다.
장비나 군수물자가 풍부해서 사기는 높지만 그리 승산 있는 전투는 아닐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적들이 가만히 숨어 엎드려 있다가 뒤에서 갑자기 따르륵 갈겨버리고 한 발 앞도 안 보이는 정글 속으로 튀어버리면 어쩔 것인가. 단 한 명의 적이라도 우리는 치명적 타격을 받게 될 것이 아닌가.
해 질 무렵, 그래도 적과의 만남 없이 첫날 정해진 매복 자리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둘째 날은 계속되는 빗속을 뚫고 두 번째 매복 지점을 찾아 정글을 헤쳐 나가는 고된 강행군이 시작되었다.
정글은 첫날보다 더더욱 험악해졌다. 적이 은거지로 삼았던 작은 개인 호나 인적이 스쳐간 흔적들이 보이기 시작하자 이날 첨병소대가 되어 선두 행군을 맡고 있는 우리 소대는 전진 속도를 차츰 빠르게 치고 나가기 시작했다.
단번에 700여 고지를 치달아 올라야 하는 이날의 행군은 참으로 힘겨운 강행군이었다. 한 번 찔리면 치명상을 입는다는 맹독을 지닌 전갈도 보였고 푸른색으로 작고도 앙칼진 몸을 가진 뱀인 청사마저 어렵지 않게 눈에 띈다. 그런 위험한 상황이지만 기진맥진해 몸조차 가눌 수 없는 피로가 몰려오자 이 수많은 독충, 어느 바위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총을 쏠지도 모르는 베트콩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지고 오로지 '우선 좀 쉬고 싶다'는 피로만이 우리 모두를 짓누르고 있었다.
악전고투였다.
우리 전투에서 적은 곧 자연이고 정글이었다. 그리고 종일토록 내리는 비였고 우리를 내리누르는 피로가 강적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692고지인 정상에 다다랐을 땐 그래도 큰 사고 없이 오늘의 고비를 넘겼다는, 뼛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작전 투입 나흘째인 D+4일, 어제의 매복지에서 오늘은 이동조차 없다가 오후 늦게야 탐색작전을 나간다고 1소대원들이 출동하는 것이 보였다.
십여 분이 지났을까, 전방 멀지 않은 저 아래 계곡에서 다급한 총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기겁을 하며 소스라친 것은 나 혼자뿐이었다. 순간적으로 '기습인가?' 하고 아찔했지만, 고참 전우들이 모두 태연한 모습을 하고 있어 되레 내가 더 놀라 버렸다.
따르륵 따르륵 숨 가쁜 M16 소총 소리가 연발로 터져 나오고 날카롭게 계곡을 뒤흔드는 M79 유탄 발사기의 찢어지는 작렬음이 섞여 숨 가쁘게 터져 나오고 있었다.
전투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으로 치열해지고 있었다. 즉시 무전기를 귀에 대어 보았다. 동일 주파수로 연결된 우리 무전기에도 다급한 전투를 치르는 작전 상황의 다급한 목소리가 전파를 타고 죽음이란 단어들이 거침없이 튀어 나왔다.
소대장 신동구 중위. 20대 중반의 젊은이로, 박력 있는 리더십과 뜨거운 정열을 가졌던 그가 삶을 제대로 꽃피우지 못하고 뜨거운 타국의 전선에서 한 점 낙화로 떨어져 버렸다. 한 사람 가족의 보살핌도 없이…….
며칠 전 작전을 마치고 무사히 부대로 돌아온 뒤 저 무서운 남국의 열병을 얻고 꼭 열흘 만이었다. 고열로 뜨겁게 신음하면서도 앞으로의 진급에 장애가 될까 봐 후송 가기를 꺼렸던 소대장이었다. 상태가 악화되자 결국은 사단 의료 헬기를 불러 사단 의무중대를 거쳐 나트랑 102육군병원으로 후송되어 갔다.
신년 1월 10일 낮 오침 시간인데도 갑자기 소대원 긴급 소집이 있었다. 나트랑 한국군의 라디오 방송을 통해 우리 소대장의 위급함을 들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해열 처방으로 냉장고 속에 눕혀져 있다가, 갑자기 수혈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피가 부족해 생명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헌혈하자." 누가 먼저인지도 모르게 뜨거운 전우애가 번지며 전우들은 팔을 걷어붙였다. A형과 O형을 가진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채혈에 응했다.
뜨거운 열남의 태양빛을 견디어 가야 할 자신들의 건강보다 생명을 같이 나누던 전우의 목숨을 더 귀하게 여기는 숭고한 전우애와 군인정신을 우리는 그렇게 배우는 것이다.
채혈자 명단을 만들고 사단사령부에 긴급 무전으로 헬기를 호출하는데, 신동구 소대장이 운명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모두가 숙연해졌다. 아픔을 가슴으로 나눌 수밖에 없었다. 소대장 전령 오 상병의 말없이 흐르는 눈물을 보고 우리 모두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죽음을 각오하고 찾아온 전쟁터이긴 하지만, 그처럼 싱싱하던 젊은 목숨이 이렇듯 거짓말처럼 허무하게 사라져 버릴 수가 있을까. 이제 며칠만 더 있으면 자랑스러운 개선 귀국을 눈앞에 두고 있었는데.
3일 후에 신임 소대장이 왔다. 이종원 중위로, 충남 연기군이 고향이라고 했다. 보병학교 출신으로 전번 소대장과는 대조적으로 퍽 호인적인 인상을 받았다.
※매일시니어문학상은
전국 신문사 최초로 매일신문이 제정해 운영하는 어르신들을 위한 문학상 공모전입니다. 만 65세 이상이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으며, 공모 부문은 논픽션, 시, 수필 등 3개 부문입니다. 대상 1명 500만원, 최우수상 3명 각 300만원, 우수상 15명 각 100만원 등 총상금 4천100만원입니다. 주제에는 제한이 없으며, 매년 5월경 공모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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