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교칼럼] 청문회와 최후 심판

요즘을 청문회 정국(政局)이라 한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부를 이끌어갈 각 부처의 책임자를 세우는 중이다. 갑자기 치른 대선이라 여러모로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청와대도 국민도 어수선하다. 그래서 청문회에 천거된 후보자들에 대해서 그 평가가 매우 상반된다. 정부와 여당의 소개를 들으면 매우 탁월한 후보자들 같고, 고개를 돌려 야당의 소리를 들으면 문제투성이 후보자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청문회 시청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그 느낌이 뭔가 좀 다르다. 나이가 들면서 청문회 후보자들이 남 같지 않다. 비슷한 연배의 저분들이 나라를 맡아 나갈 분이구나 싶은 생각에 이제 그 안에 책임감이 공유된다. 그러니 그들이 받는 질문에 나를 대입시켜보기도 한다. 청문회 위원들이 준비해온 질문 자료들을 보면서 놀라기도 하다. 지인이 그 후보자 중 한 분인데 사전 자료 제출 과정에서 카드 사용 내역까지 다 털렸다고 한다. 그 말의 뉘앙스는 발가벗겨졌다는 수치심이었다. 과거 정부에서 적지 않은 후보자들이 낙마했다. 후보자로 거론만 되어도 벌써 언론에서 추적하여 발가벗기므로 그 수치심 때문에 스스로 손들고 나간 경우도 있었다.

공직 후보자에게 요구하는 5가지 인사 원칙론이 그리 무거운 짐은 아닌 듯싶다. 건전한 국민으로서 지닐 기본 도리이고 상식선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후보자들의 신상 뚜껑을 열어보니 직무능력은 되는데 흠결이 이미 나 있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그 기준을 낮추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고, 적지 않은 국민들이 그 소리에 공감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자기에게도 맞추어 보니 다 걸린다는 것이다. 위장 전입, 세금 탈루, 논문 표절, 부동산 투기, 병역 면탈이 그것이다. 나름 열심히 살아와 능력을 인정받은 자들일수록 하나 이상 다 걸린다는 자백들이다. 청문회에 나오지 않았으니 드러날 기회가 없었을 뿐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성경에 보면 인류 역사의 마지막 날은 최후 심판일이다. 그날에 모든 것이 다 드러난다. 불꽃 같은 눈을 가진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 하나하나씩을 다 살피신다. 그것도 외면뿐 아니라 내면의 생각마저 아시고 심판하신다. 사람이 행동한 것만이 아니라 행동을 도모하려는 의도까지도 심판을 받게 된다. 그런 중에 뜻밖의 결과가 나온다. 부자는 지옥 불에 던져지고, 거지는 천국에 먼저 가 있는 믿음의 조상 품에 안겨 있는 광경이다. 위대한 종교적 사역을 감당하거나 많은 선행을 행했다고 자부하는 자가 엄한 심판을 받고, 별로 선행을 행할 기회가 없었던 자가 의로운 사람으로 판단받기도 한다. 이유는 뜻밖의 잣대가 있는데, 단지 어린 소자 하나에게 찬물 한 그릇을 주었느냐 아니냐에 달렸다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최후 심판의 두 가지 특징이 있는데, 하나는 매우 엄밀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뜻밖의 뒤집힌 심판이란 것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한다.

청문회에 자기를 앉혀 대입하여도 통과할 자신이 없는데, 하나님이 하실 최후 심판의 자리에 들어가면 우린 어떻게 될까?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선언했다. 그래서 심판을 피할 길은 오직 하나 하나님의 용서이다. 인류 최고의 복음은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 소식이다. 동시에 성경은 용서받은 자가 다른 이를 용서하며 살라는 명령을 담고 있다. 하나님의 진노는 용서받은 자가 타인의 죄를 정죄할 때 일어난다.

청문회를 기회 삼아 우리 사회가 좀 더 청명해질 뿐 아니라 이해와 관용이 통하는 상생의 사회가 되길 바란다. 내가 용서받을 때 겸손해지고, 내가 용서해줘야 할 때 아낌없이 자비를 베푸는 성숙하고 여유 있는 사회가 되길 바라는 것이 단지 종교인들의 허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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