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여 벤처 진흥사업 퍼주기식 경쟁
정부 건강한 플랫폼 만들기에 실패
유대인 창업시스템 신뢰'신용 기반
한국도 가계'기업'정부 상호 믿음을
새 정권이 출범할 때까지 불확실한 정책 방향 속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던 창업과 벤처업계가 모처럼 환한 표정이다. 지난 정권의 대표 사업으로 낙인찍혀 존폐를 걱정하던 창조경제 관련 조직들도 안도를 넘어 기대에 찬 분위기로 전환된 듯하다.
작년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한 중소벤처 진흥사업이 1천200개가 넘고 이에 16조원 이상의 돈이 실리다 보니 기관 간 색깔 없는 퍼주기식 경쟁이 난무했다. 경쟁적으로 무상 창업보육공간을 만들었고 각종 지원 프로그램을 그 위에 얹었다. '건강한 창업 생태계 조성'을 주도해야 할 정부 스스로 생태계의 작동 원리를 왜곡하는 부작용을 낳고 말았다. 자원 투입으로 단기적인 실적을 만들기는 했으나 지속 가능한 건강한 사업과 일자리를 만드는 데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럼 과연 '건강한 창업 생태계'란 무엇을 의미하나? '건강한'이란 단어가 붙었으니 창업시장에 생태계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생태계'란 어떤 지역 안에 사는 생물군과, 이것들을 제어하는 무기적 환경요인이 종합된 복합 체계를 말한다. 생태계를 구성하는 생물적 요소는 그 기능을 기준으로 크게 '생산자'와 '소비자', '분해자'로 나눌 수 있다. 생산자는 대부분 녹색식물 그룹으로 이들은 태양에너지를 이용하여 탄수화물과 생명활동에 필요한 유기화합물을 생성한다. 창업 생태계에서는 '창업자와 창업기업'이 이에 해당한다. 소비자는 생산자가 만들어 낸 유기물을 직간접적으로 소비하며 살아가는 동물 그룹을 의미한다. 창업기업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소비해 주는 '가계-기업-정부'가 이에 해당한다. 분해자는 생산자나 소비자, 또는 다른 분해자의 사체나 배설물을 분해하는 세균이나 균류를 말하며 '자본시장'이 이에 해당한다. 무기적 환경요인은 '법과 제도, 정책, 문화'로 볼 수 있다.
생태계 내에서 무기물은 생산자에 의해 유기물로 합성되고 소비자를 거쳐 분해자를 통하여 다시 무기물로 돌아오는 '순환'이 일어나는데, 이 사이클이 막힘없이 돌아갈 때 건강하다고 말한다. 생산자인 창업기업은 소비자가 좋아하는 가치를 만들어 내야 존재 의미가 있다. 그렇지 못한 기업에 대해서는 분해자인 자본시장이 작용하여 퇴출시켜야 하는데, 이 기능이 작동되지 않으면 좀비 기업이 양산되고 생태계가 오염되는 것이다. 그간의 정부 정책이 생산자 확대를 위해 금융 및 지원 강화에 방점이 가다 보니 이러한 부작용을 야기한 면이 있다.
지난 정권에서 구축한 18개의 창조경제혁신센터는 대기업 한 군데씩을 참여시켜 출범한 구조다. 적극적 참여 의사가 있지 않은 한 이들 대기업이 하는 소비자 역할이 그리 활발할 수 없다. '소비자로서 가계와 정부'가 적극 참여하는 프로그램도 부족했다. 많은 이들이 부러워하는 '유대인들의 창업 생태계'와 근본적으로 대비되는 부분이다. 유대인들은 신뢰와 신용을 중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창업가들은 시장과 소비자들을 위한 차별적 가치 창출 모델을 설계하는 데 더해 제반 경영활동을 투명하게 해야 한다는 책임의식을 갖고 일한다. 투자자는 그 신뢰에 기반하여 투자를 하지만, 자금의 투입에 국한되지 않고 사업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주목할 것은 해당 커뮤니티의 소비자와 기업들도 신생 기업의 상품이나 서비스에 적극 관심을 가지고 구매 및 소비에 참여한다는 점이다.
요즘 벤처기업들의 가장 큰 애로 사항은 더 이상 돈이 아니다. 오히려 초기 시장 진입의 어려움이 훨씬 더 크다. 특히 그 제품과 서비스가 정부나 공공 서비스의 영역일 때 그 판매 어려움은 더욱 큰 경우가 많다. 예산 확보 및 집행 절차, 입찰 자격 요건, 여러 부처나 기관 간 협의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결국 이들 문턱에서 좌절하거나, 가까운 시장을 두고 낯선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려야 하는 아이러니가 흔히 벌어진다. 이제 예산 투입과 정책 정비에 더해, 가치 창출에 매진하는 '신뢰할 수 있는 생산자'와 가계-기업-정부가 적극 '참여하는 소비자', 느린 실패로 빠지지 않게 하는 '투명한 분해자'가 제대로 역할을 하는 '한국형 창업 생태계'를 반드시 만들어야 할 시점이다. 우리 모두의 관심과 참여가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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