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뉴욕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큰딸이 회사에서 12세 이전에 찍은 어린 시절 사진이 갑자기 필요하다며 연락이 왔다. 아침밥을 짓다가 앞치마에 대충 손을 훔치고 아이들이 떠난 후로 오랫동안 열어보지 않은 방으로 빨려 들어가듯 들어가 한참을 머물렀다. 오랜 시간 속에 내려앉은 먼지와 기억들이 중첩되어 어디서부터가 시작인지, 어디로 굽어들었는지 모르게 엉켜 드는 생각을 붙잡고 낡은 앨범을 넘기며 몇 장의 사진을 골라 다시 찍어 전송했다.
한동안 잊고 지낸 일들이 한꺼번에 달려나와 아침 밥상 위에 반찬으로 올려졌다. 남편과 나는 각자의 의식 속에 간직된 것들이 가장 옳은 것인 양 뽐내며 이야기꽃을 피웠고 너무나 평범하고 반복되었던 일상들이 시간이 한참 지나서 이렇게 소중한 것이 될 수 있다니 놀라웠다. 연년생이었던 두 딸이 서로 다르게 누워 한가롭게 젖병을 문 빛바랜 사진을 오래 들여다보며 그 시절 무척 바쁜 시간을 보냈던 남편은 "어린 자매가 젖병을 같이 물고 있는 걸 실제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시간과 공간을 함께 지내왔다고 해서 보고 느끼는 것이 똑같을 수야 없겠지만, 그 시절 자고 나면 삶아야 할 젖병과 기저귀가 두 찜통씩 기다리고 있던 내 고단함을 전혀 몰랐다고 생각하니 잠깐 야속했다.
오랫동안 시(詩)가 내게로 오지 않을 때 가끔 미술관으로 간다. 그곳에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함께 어우러져 있어서 닫혔던 생각들이 마구 움직이기도 하고 때로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채색되기도 해서 신나고 즐겁다. 대구미술관에서는 현재 '매체 연구: 긴장과 이완'전(展)과 '고스트 Ghost'전이 열리고 있다.
'매체연구: 긴장과 이완'은 다원예술이 주목받는 이 시대에 시각예술에서 매체의 현재성은 어떠한지 다양한 양상을 확인하며 오늘의 현대 미술을 진단하고자 기획되었다.
'고스트 Ghost'는 오늘날 우리 사회 속에서 인간의 삶을 위협하거나 두렵게 하는 무형의 존재에 대한 개념을 '고스트'로 설정하여, 그러한 존재를 가시화하는 작품들을 통해 우리를 혼란스럽게 혹은 은연중에 속이는 실체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기존에 존재하는 사진을 분류하고 나열해 사진의 의미를 재구축하거나 사진 안팎으로 감춰져 보이지 않는 이야기들,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간극을 포착하려는 작업은 특히 흥미로웠다. 또한 무심한 일상에서 작가는 의미를 찾아 추상적인 방법으로 그 의미를 생성하고 색과 색, 색과 공간과의 관계를 형성하여 작품 입장에서도 관객을 작품으로 인정하고 보는 재미를 선사했다.
긴장과 이완의 시간을 반복하는 동안 내 삶도 시도 함께 깊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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