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 칼럼] 파란나비효과

따스한 봄날이라고 다 같은 봄날은 아니었다. 어둠을 물리치고 빛이 승리한 날에도, 성주에서는 사드를 실은 트레일러를 막겠다고 고단한 싸움을 하는 '파란나비'들이 있었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둔 지난 4월, 사드 배치는 '군사작전'처럼 시작됐다. "우리나라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사드 장비를 실은 미군 트럭이 들어가는데 아무것도 할 수가 없으니 미칠 것 같았다." 그의 첫마디는 격정적이었다. 280여 일을 버티며 막아왔던 사드가 새벽 시간을 틈타 군용 차량 수십 대에 실려 기지로 이동했다. 도로를 방어하는 중무장한 경찰 병력 뒤에서 사드배치철회 성주투쟁위원회 촛불상황실 박수규 실장은 사드 장비가 지나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여기는 평화나비광장/평화 드라마를 찍는 세트장이다/ 모두가 연속극의 주인공이고/모두가 연속극의 스텝이다 고난의 상황을 순식간에 평화의 상황으로 만들어버리는/촛불상황실의 박수규 실장님 성주가 쓰는 이 드라마는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누가 잔치는 끝났다고 하는가/성주의 싸움은 매일 매일이 잔치다'

김수상 시인이 지난해 12월 성주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글쓰기 모임인 '다정' 회원들과 함께 공동으로 창작한 시이다. 시에 등장하는 박수규 실장은 "사드 때문에 일상이 무너졌다"고 말한다. 그는 성주 대가면에서 낮에는 벼와 딸기 농사를 짓고 밤에는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평범한 주민이었다. 지난해 여름 사드가 성주읍 성산에 온다고 했을 때는 눈만 뜨면 성주군청 앞마당에 나가 있었다. 사드 배치 지역이 성주골프장으로 바뀐 이후부터는 거의 매일 소성리 회관에 나가고 있다.

사드의 한반도 배치는 주민들의 의사는 전혀 고려되지 않은 밀실 결정과 일방통행의 연속이었다. 박근혜정부는 2014년 사드 도입 추진 의혹에 "미국과 협의도, 결정도 없었다"는 입장만 반복하다 2016년 새해 기자회견에서 "사드 배치 검토"로 입장을 바꿨다. 그해 7월 8일 '사드 배치 결정' 일방 발표를 거쳐 7월 13일에는 사드 배치지역을 성주로 기습 공개했다. 주민 반발이 거세지자 성주골프장으로 장소를 옮기겠다고 아무 사전 협의도 없이 발표한 후 4월 26일 새벽에는 사드 핵심 장비를 알박기하듯 기습적으로 배치했다.

300일 넘게 촛불을 내려놓지 않고 있는 성주의 '파란나비'들은 촛불의 염원을 안고 출범한 문재인정부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하지만 전임 대통령이 내린 '적폐'는 세상이 바뀌어도 계속 진행 중이다. 급기야 새 대통령과 전임 정부의 국방장관이 동거하는 어정쩡한 시기에 '사드 배치 보고 누락'이라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통령은 미국 상원의원들을 만나 "이미 배치된 사드기지는 이견이 없고 존중한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충격에 빠져버렸다. 대통령의 발언으로 사드 배치가 기정사실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에 빠졌다.

지난해 7월 무더위에서 시작한 사드 반대 촛불집회가 어느덧 또 다른 여름의 문턱까지 왔다. 처음엔 전자파로 아이들이 입을 피해가 걱정되어 시작한 싸움이었지만, 성주 군민들은 점차 지역공동체를 지키는 노력이 곧 한반도의 평화를 염원하는 기도의 자리가 됨을 알게 되었다. 성주에는 고향을 사랑하는 또 다른 박수규들이 많다. 평화를 외치는 그들의 목소리를 한 번만 귀 기울여 보자. "소성리에 국민이 살고 있다. 사드 배치 과정의 절차적 적법성만이 민주주의의 문제가 아니다. 국익을 위해 소성리 주민의 생존과 민주적 권리가 배제된다면 대한민국에 민주주의는 없다."

마침 오늘부터 전국에서 성주의 사드 배치 반대 투쟁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파란나비효과'가 개봉된다. "사드 가고 평화 오라"는 소성리 주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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