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른 아침에] 무엇이 새 정부를 흔드는가?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제2회 백만원고료 한국문학 신인상. 전 경희대 법대 겸임교수. 전 자유경제원 원장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제2회 백만원고료 한국문학 신인상. 전 경희대 법대 겸임교수. 전 자유경제원 원장

새 정부 조각 과거와 다를 바 없어

장관 임명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

미국 내부 불신의 말 나오기 시작

코앞 한·미 정상회담 세계가 주목

'새 대통령은 하루만 즐겁고 남은 5년이 괴로울 것이다.' 4년 반 전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날에도,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지난 5월 10일에도 나는 무슨 예언처럼 이 말을 했다. 그러나 그 의미는 사뭇 달랐다. 박 전 대통령은 보수층을 대변한다면서도 보편적 복지를 수용하고 6'15선언을 지지하는 등 '급진좌파'적 정책을 내세웠다. 다분히 선거용 정책들이었다. 어쨌든 '증세 없는 복지'는 재정 정책을 펼 여지를 줄일 터였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박근혜 캠프에 브레인다운 브레인이 없다는 점이었다. 친박으로 불린 이들은 물론 공신을 자처하던 비대위원들 면면에는 국가 경영의 큰 그림을 그릴 만한 내공을 가진 이가 보이지 않았다. '영혼이 없는 실용 정부'였던 이명박정부의 '무난한 5년'을 뛰어넘을 로드맵은 처음부터 없었다. 그러니 내공이 턱없이 부족했던 대통령은 갈팡질팡했다. 박근혜정부가 실패한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잘못 꿰진 첫 단추에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문재인정부는 좀 다를 줄 알았다. 문 대통령은 무엇보다도 두 번의 실패를 직접 지켜보았던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노무현정부의 실패는 누구보다도 그 원인을 잘 알 수 있을 터였다. 그는 그 정부에 책임을 함께하는 '왕실장'이었다. 두 번째 박근혜정부의 실패는 그가 정치적 반대자 위치에 있었으므로 더 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그런 까닭에 새 정부는 어쩌면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로드맵을 가진 진보 정권이 될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5년이 괴로울 것이라고 내가 염려한 것은 박 전 대통령 때와는 다른 이유에서다. 우선 새 정부는 복지 확대를 주장하는 진보 정부다. 그런데 재정절벽(財政絶壁)을 만날 수밖에 없다. 해마다 50조원을 넘나드는 국채를 순증(純增)시키며 빚을 내 복지를 하던 전(前) 정부를 따를 수는 없지 않겠는가? 무엇보다도 이제 더는 국가부채를 늘리면 안 될 재정 상황에 이르렀다. 말하자면 돈 쓸 일은 많은데 빈 곳간을 물려받은 것이다. 그렇다면 세금을 더 거둘 수밖에 없을 터인데 세금을 올리면서 무슨 재주로 대중의 지지를 받겠는가?

그런데 새 정부는 다른 곳에서 삐걱대기 시작했다. 준비된 대통령으로서 '섀도캐비닛'을 발표하겠다고까지 했던 것과는 달리 새 정부 조각(組閣)은 한마디로 과거 정부와 전혀 다를 게 없다. 장관 후보자들의 도덕성은 굳이 따지지 않겠다. 위장 전입이니 논문 표절이니 하는 추악한 면은 옷에 묻은 진흙 정도로 여길 수도 있다 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굳이 쓰겠다면 그에 걸맞은 명분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4강 외교를 전혀 경험하지 못한 외교부 장관부터 굳이 해군 출신을 국방부 장관에 임명해서 국방개혁을 하고 비검찰 출신을 법무부 장관에 등용해 검찰개혁을 하겠다는 발상까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가장 큰 문제는 '대화파' 일색으로 꾸려진 외교안보 라인이었다. 통상외교 전문인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임명됐을 때 나는 솔직히 충격을 받았다. 거기다 남북대화 실무자 출신인 서훈 국정원장과 인권 난민 전문가인 외교부 장관까지 외교안보 라인은 새 정부의 대북정책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한눈에 알 수 있게 했다. 아마 지금쯤 김정은은 쾌재를 부르고 있을 것이다. 새 정부 대북정책의 한계가 뚜렷하니 그가 무얼 걱정하겠는가.

이래서 판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드 배치를 두고 혼선이 빚어지기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인수위 없이 출범한 새 정부의 해프닝으로 보였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딕 더빈 미국 민주당 상원 원내총무가 청와대를 다녀가면서 실망감을 여과 없이 표출하고 미국 조야(朝野)에서 새 정부에 대한 불신의 말이 여기저기서 나올 즈음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의 발언이 불을 질렀다. 북핵과 미사일 도발을 중단하면 한미합동군사훈련과 미국 전략자산을 축소할 수 있다는 이 대담한 말은 북한 입장을 넉넉히 이해하지 않는 한 나오기 힘든 말이었다. 그분은 학자 입장에서 한 말이라고 강변했지만 그런 변명이 통할 것이라고 국제정치 역학관계를 쉽게 이해했다면 처음부터 특보 자격이 없는 것이다. 어쨌든 코앞에 닥친 한미 정상회담이 이제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됐다. 사드는 피해갈 수 없는 의제로 떠올랐다. 문 대통령이 이 난국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그의 주변엔 왼쪽 날개로 나는 새들만 모여 있다. 그래서 대통령이란 자리는 괴로운 자리다.

(독자 여러분, 개인적 사정으로 필진에서 하차합니다. 언젠가 다시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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