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 칼럼] 경제는 '가운데'다!

서울 출생. 관악고. 서울대 무역학과. 미국 캘리포니아대 경제학 박사. 한국은행 조사국 통화재정팀장. 한은 부설 경제연구원 부원장
서울 출생. 관악고. 서울대 무역학과. 미국 캘리포니아대 경제학 박사. 한국은행 조사국 통화재정팀장. 한은 부설 경제연구원 부원장

정부 지나친 시장 개입 인플레 불러

과도한 시장 자율은 금융위기 단초

경제 이념이 독단되면 처방 잘못돼

쏠림 없이 변화에 유연히 대처해야

인간이 가치판단을 하고 행동함에 있어 이념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은 복잡한 반면 이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에 정보를 취사선택하고 옳고 그름과 사안의 경중을 따질 기준이 필요하다. 주변 세상과 인간을 연결하는 프레임으로서 이념이 존재하는 이유다.

수많은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경제행위의 상호작용을 규명하는 학문인 경제학에도 이념은 존재한다. 공산주의와 비교하지 않더라도 자본주의 내에도 여러 이념들이 있고 주류 경제학으로 시야를 좁히더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선진국의 경제정책은 1980년을 기점으로 하여 전반기에는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을 지지하는 케인지언 이념이, 후반기에는 시장 자율을 지지하는 신자유주의 이념이 각기 주도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영원한 제국이 없듯이 신자유주의 이념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뒤이은 글로벌 경기침체를 배경으로 주도적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 지나친 시장 자율이 금융위기의 원인을 제공하였고 소득 불평등을 심화시켰다는 비판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가운데 정부의 시장 개입도 한시적 위기 대응이란 꼬리표를 달고 있지만 크게 늘어난 게 사실이다. 경기가 순환하듯이 경제 이념도 성장과 쇠퇴의 순환을 겪음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이러한 경제 이념의 부침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두 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첫 번째 교훈은 이념이 도그마로 변질되지 않도록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이념은 생성 당시의 시대 상황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주변 여건은 끊임없이 변하는 반면 이념은 일단 자리를 잡으면 변화를 거부하는 속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 결과 상황이 변하여 이념의 현실 설명력이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뇌리에 깊이 박혀 문제에 대한 그릇된 처방을 낳게 한다. 이념이 도그마로 변질되는 순간이다. 1930년대 대공황을 배경으로 형성된 케인지언 이념은 1950년대 서구 자본주의의 황금기를 뒷받침하였으나 1960년대 중반부터 수요의 공급 초과 현상이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정부 주도의 완전 고용 노선이 유지되도록 함으로써 1970년대의 글로벌 인플레이션 문제를 야기한 바 있다. 신자유주의도 인플레이션이 화폐적 현상임을 설파함으로써 긴축적 통화정책을 이끌어내 1970년대의 글로벌 인플레이션 문제를 해소하는 데 기여하였고 규제 완화를 통해 2000년대 글로벌 호경기를 견인한 바 있다. 그러나 시장 기능을 과신한 탓에 금융 불균형의 축적을 간과하도록 함으로써 글로벌 금융위기의 단초를 제공한 데다 낙수 효과에만 매달려 소득 불평등을 심화시킨 측면이 있다.

두 번째 교훈은 인간은 이념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으나 경제 현상은 이념과 무관하다는 점이다. 시대적 이념에 관계없이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면 인플레이션 문제가 야기되기 마련이고 수급의 균형 회복 없는 정부 정책은 '백약이 무효'다.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은 시장 기능을 위축시키지만 맹목적 시장 자율도 탐욕의 방치를 통해 자산 버블과 경제력 집중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 실패도 있지만 시장 실패도 있는 만큼 어느 한쪽에 치중하여 정책을 펴는 것은 좋지 않다. 어느 일방을 중시하면 경제에 불균형이 쌓이고 임계치를 넘어선 순간 시장의 자정 기능이 작동하지 않음은 1970년대 글로벌 인플레이션 사례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사례가 입증하고 있다.

두 가지 교훈을 종합하면 이념이 도그마로 변질되지 않고 경제 불균형이 누적되지 않도록 사고와 행동의 유연성을 높이는 것이 긴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우선 이념이 시대 상황에 부합하는지를 수시로 점검함으로써 사고의 쏠림을 경계하여야겠다. 경제학 교과과정에 비주류 이론을 편입하거나 정치학, 사회학, 심리학 등 유관 학문과의 학제 간 연구를 활성화함으로써 경제학의 개방성을 확대하는 것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또한, 단기간에 가격이나 양적 지표가 급격히 상승하거나 하락할 경우 이론에 근거한 분석에만 의존하지 말고 일단 의심하고 경제의 쏠림을 완화하는 예방 조치를 취한다면 인식의 편의(bias)와 정책의 오류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경제는 '가운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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