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전반 아찔한 암벽 코스 떨쳐
절골삼거리 지나면 완만한 경사길
하산길 큰작사골에 설치된 전망대
송곳바위·앵기랑바위 능선 한눈에
아미산 얘기를 듣고 제일 먼저 생각난 건 변영로의 시 '논개'였다. '아리땁던 그 아미(蛾眉) 높게 흔들리우며…'를 떠올리며 미인의 눈썹과 관련된 설화가 있거나 산 모습이 '아이 라인'을 닮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기대했던 미인과의 조우 환상이 깨진 건 아미산 주차장에 당도하면서부터. 눈앞을 막아선 거대한 암봉, 암릉은 미인 판타지를 깨기에 충분했다. 표지판을 자세히 보니 한자도 달랐다. '바위를 쌓아올린 산'이라는 뜻의 '아미산'(峨嵋山)을 달고 있었다. '미인 판타지' 모드를 암벽 산행 모드로 급변경하고 등산로로 접어들었다.
◆'미니 설악산' 수식어 붙은 아미산=한국 최고의 암릉 산행 코스는 누가 뭐라 해도 설악산 공룡능선이다. 신선암에서 마등령에 이르는 20리 길은 한국 최고의 암릉 트레킹 코스로 꼽을 만하다.
기존의 아미산 산행기 중 가장 많이 등장하는 표현 하나가 '작은 공룡능선'이다. 용아장성이라는 표현도 있는데 규모나 위세 면에서 다소 과장이 아닌가 한다. 일단 진입로를 막아선 송곳봉은 설악산의 신선봉과 비교되고 2봉-앵기랑바위-4봉 능선은 1천275봉, 나한봉과 견주면 될 듯하다. 특히 4호 암봉에서 내려다보는 석산리 들녘 풍경은 최고의 뷰(View)로 평가된다.
아미산의 특징 중 하나는 전반에 아찔한 암릉 코스를 먼저 타고 후반에 한적한 육산(肉山)을 탄다는 점이다. 국문법으로 말하면 '두괄식' 산행이요, 철학적으로는 연역적 전개다.
어떤 산행기에서는 소설에서 전결(轉結)이 먼저 나오고 기승(起承)으로 마무리되는 형식 파괴의 산이라고 하는데 공감이 가는 표현이다.
◆주차장-정상-전망대 8.2㎞ 코스=아미산 등산은 종주 코스, 원점회귀 코스에 따라 여러 갈래로 나뉜다. 원점회귀 산행객들에겐 주차장~앵기랑바위~큰작사골삼거리~무시봉~아미산 정상을 거쳐 밭미골 삼거리~전망대~대곡지를 거쳐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코스가 주류를 이룬다. 총산행거리 8.2㎞에 산행 시간은 약 5시간 30분.
하산길에 큰작사골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접어들어 '전망대'를 꼭 들러보기를 추천한다. 아미산 암릉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초입에 만나는 송곳바위는 아미산의 수문장 같은 곳이다. 높이는 30m 남짓하지만 발아래 풍광은 가히 압권이다. 2봉을 지나 만나는 앵기랑바위는 위태로운 사각(斜角)으로 우뚝 서 산객들을 위협한다. 보는 각에 따라 코끼리바위, 왕암바위로도 불리지만 정식 이름은 아기 동자승의 모습을 닮았다 해서 앵기랑바위다. 6'25전쟁 때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 역할을 했고 1970년대 월남파병 때도 동네 청년들이 바위의 음우(陰佑)로 사상자가 없었다고 한다.
◆전망대 서면 암릉 퍼레이드 압권=암릉이 끝나면 반전이 기다린다. 큰작사골삼거리, 절골삼거리를 지나면 활엽수림이 나타나며 분위기가 급반전된다. 맹위를 떨치던 암릉 구간은 순식간에 완만한 육산(肉山)으로 변한다. 300m를 넘나들던 고도는 600m로 수직 상승한다. 그러나 대부분 완만한 경사길이라 고도가 크게 불편하지 않다.
제일 먼저 무시봉(667m)을 만난다. 어원을 찾아봤지만 해답을 찾을 수 없었고 '사방이 나무에 가려 아무것도 볼 수 없다'는 무시(無視)라는 뜻으로 추측할 뿐이다.
무시봉에서 1㎞ 직진하면 아미산 정상이 나온다. 역시 사방이 나무에 가려 조망 기능은 제로에 가깝다. 대신 곳곳에 쉼터를 펼쳐 산꾼들에게 식사 장소를 제공한다.
정상에서 인증샷을 찍고 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 하산길을 잡는다. 도돌이표 산행이 지겹다면 큰작사골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돌아 전망대-대곡지 쪽으로 접어들면 된다.
큰작사골에 설치된 '전망대'에서는 송곳바위에서 앵기랑바위 암릉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미산에 '미니 설악산'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유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고도를 낮춘 산은 이제 평지다. 대곡지 물빛에 눈을 정화하고 오른쪽으로 난 소로(小路)를 따라 10분쯤 더 오니 첫 출발지인 주차장이 일행을 맞는다.
기대했던 '미인의 눈썹'을 보지 못했고 '암릉 퍼레이드'로 상쇄한 셈인데 그 '거래'가 크게 불만스럽지 않은 것은 '장수 눈썹' 같은 우람한 산세에 이미 압도되었기 때문이다.
삼국유사 저술 일연 스님 머문 곳
아미산 가는 길 '인각사' 들르세요
대구에서 신녕을 거쳐 아미산으로 가는 중에 오른편으로 사찰 하나가 나온다. 일연(一然) 스님이 거처했다는 인각사(사진)다. 절 입구에 깎아지른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에 기린이 뿔을 얹었다' 해서 이 이름이 붙었다고도 하고 일설에는 절터가 기린의 뿔에 해당하는 지점이라고 해서 인각사로 불렸다는 얘기도 전한다.
고려 충렬왕 때 일연 스님이 중창했고 스님의 사리탑과 행적을 기록한 '보각국사탑비'가 있다. 이 탑비는 죽허(竹虛)가 왕희지(王羲之)의 글씨를 모아서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병화로 글자가 심하게 훼손돼 알아보기 어렵다.
역사학자들은 삼국유사 없는 우리 고대사는 상상할 수조차 없다고 말한다. 인각사가 우리에게 소중한 이유는 바로 이 삼국유사가 저술된 역사의 산실이자 저자 일연 스님이 말년을 보낸 곳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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