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만캐도 전생(前生)에
저거 아부지가 치과의사였던 갑다
우짜마 알갱이 이박음이
요록쿰 촘촘할꼬!
내사마 낭죄에
참 용한 치과의사라도 된다 카마
요 촘촘한 것들의
줄기세포만 몽땅 뽑아서
저 시골의 꼬부랑 할망구
듬성듬성한 이빨들
말짱 고쳐 놓겠다!
(시집 『숟가락』 《천년의 시작》 2008년)
*암만캐도: 아무래도
*저거 아부지: 자기네 아버지, 여기서는 '알갱이 이박음'이 촘촘한 '석류의 아버지(?)'를 말한다
*치과의사였던 갑다: 치과의사였던가 보다
*우짜마: 어쩌면
*알갱이 이박음: 석류 속의 알갱이가 사람의 치아처럼 빈틈없이 촘촘하게 박혀 있다는 의미
*내사마 낭죄에: 나야말로 나중에
*참 용한: 아주 빼어난
*말짱: 말끔히
필자가 난생처음으로 석류를 쪼개 보고 경이(驚異)를 느낀 것은 선홍색의 붉은 속살보다 머리칼 하나만큼의 빈틈도 없이 촘촘하게 틀어박혀 있는 씨앗 알갱이들의 단단한 '이박음'이었다.
석류 속의 알갱이가 치아처럼 가지런하고 촘촘하게 박혀 있다고 하여 전생에 석류의 아버지(?)가 치과의사였을 것이라고 가정한 것은 너무 황당하고 엉뚱해서 쓴웃음을 자아내게 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작품을 읽고 난 어느 독자는 이 대목을 대하는 순간 무릎을 탁 치면서 마치 번갯불이 번쩍하는 듯한 짜릿한 공감을 느꼈다고 한다. 이 시를 쓴 시인이나 읽는 독자는 이 세상을 살아오면서 뭔가 공통적인 선험적(先驗的) 인식을 공유(共有)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를테면 시적(詩的) 상상력이라고 할 수 있을 터인데 이렇듯 다소 황당하고 엉뚱한 이미지를 서로 충돌시켜서 불꽃을 일으키게 하는 기술은 순전히 시인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인 백남준 선생이 금의환향해 고국의 공항에 내려 한 기자를 붙들고 귓속말로 제일성(第一聲)으로 일갈한 말은 "예술은 모두가 사기(詐欺)야" "일종의 고급 사기라고 할 수 있지"라고 했다는 말이 언뜻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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