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이 있다. 성리학 국가이념을 가진 조선에서 '이름'이 가진 명예의 무게는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였다. 내가 죽어서도 사라지지 않고 대대손손 물려줄 수밖에 없는 유산. 사육신은 충절의 이름을 위해 목숨을 버렸고, 양반가문의 여식들은 열녀문의 명예를 위해 은장도를 빼들어야 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지를 가문의 이름과 타고난 핏줄이 결정하던 시대.

하지만 변화를 거부하던 조선왕조는 세계사의 흐름 속에 무너졌고 일제강점기, 6'25전쟁, 분단, 독재와 민주화 혁명 등 한 세기의 격변기를 거치면서 온 세상이 뒤집혔다. 모든 조직의 가치기준이 무너지고 개인이 스스로 어떻게 살지를 결정할 수 있고 결정해야만 하는 시대가 왔다.

개인주의 시대, 부, 권력, 정의실현 등 각자의 목표는 다를지라도 우리가 함께 추구해야 할 핵심 가치는 무엇인가. 19세기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빌어 답하면 케케묵었지만 그래도 역시 사랑이다.

두 아기의 엄마인 한 여인의 영혼을 가져가려고 내려온 천사 미카엘. 그는 자신이 없으면 아이들이 죽을 것이라 애원하는 여인을 보고 고민에 빠진다. 하나님은 직접 여자의 영혼을 데려가고 미카엘에게는 인간이 되어 세 가지 난제의 답을 찾는 숙제를 준다.

첫째,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벌거벗은 인간의 몸으로 생소한 추위와 배고픔에 떨던 미카엘은 가난하지만, 마음 따뜻한 구두장이 시몬에게 구원되어 그의 집에서 생활하게 된다. 답은 '하나님의 사랑'.

둘째,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그 해답은 자신이 그날 죽을 줄도 모르고 1년을 튼튼하게 신을 구두를 협박하듯 주문하는 귀족 신사를 통해 얻어진다. '사람은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마지막 세 번째 질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오랜 시간이 흘러 자신이 데려가려 했던 여인의 아이들이 양모의 손을 잡고 구두장이의 집을 찾아온다. 엄마가 없지만, 이웃의 속 깊은 배려 속에 잘 성장하고 있는 아이들. 미카엘은 깨닫는다.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

나는 금수저가 아니어도, 든든한 가문이 없어도 살 수 있지만, 단골 식당 사장님과 변변치 않은 성과에도 꼬박 월급을 주는 회사, 나를 찾아주는 수강회원들, 온갖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해주는 친구들 없이는 살 수 없다.

각자 홀로 서야 하는 우리를 이어주고 지지해주는 강력한 끈. 그것이 사랑이며 인공지능의 시대 21세기에도 역시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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