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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문화재, 10만 시간의 지혜] 백영규 백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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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약사발 만들고 인생 확 바뀌었죠"

백영규 백자장이 분청사기를 재현한 작품을 들어보이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백영규 백자장이 분청사기를 재현한 작품을 들어보이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1969년 나는 그때 문경에 있었다. 한약 사발을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받고서였다. 화분 만드는 사람들이 많이들 있었다. 그때가 도예가들의 인생이 확 바뀐 때였다."

경북도 지정 무형문화재 백자장 보유자 백영규(80) 옹. 몇 대째 이어온다며 정통성을 강조하는 여느 도예가들과 달랐다. 무협지로 비유하자면 그는 선친의 유지를 잇기 위해 단련한 무림의 고수가 아니었다. 강호의 고수를 찾아다니는 이들이 그의 솜씨를 알아보고 '한 수 배우자'며 대결을 청하러 오는 협객이었다.

"아버지 일을 도우려 14세 때 이 길로 들어섰다. 선친께서 도공을 부려 함께 일했다. 몇 달치 선임금을 챙겨서 도망가는 이들이 적잖았다. 그래서 나섰다. 옛날에는 도자기 만들던 이들을 모두가 하대해 '이런 일 하지 말라'던 때였다. 나이가 어린 사람도 도공을 보고는 '김서방, 이서방'하고 불렀을 정도니."

그는 자신의 흑역사가 될지도 모르는 과거를 이야기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무형문화재 보유자의 명성에 지장이 없겠냐 물어도 '상관없다'고 했다. 과거에 그랬던 게 맞고 바꿀 수도 없는 것이라며.

"본격적인 건 1956년부터다. 원조로 들어온 설탕을 대량으로 끓여 녹여서 '양꿀'이라고 파는 사람들이 있었다. 양꿀을 담을 용기가 필요하다며 1되(1.8ℓ) 들이 항아리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10년 넘게 그걸 만들었다. 아마도 1억 개 이상 만들었을 거다. 그러다가 어떤 사람이 찾아왔다. 웬 사발을 꺼내 보이더니 '이거랑 똑같이 만들 수 있겠느냐'고 했다. '만들 수 있다'고 했더니 월 7만원을 준다는 조건으로 그리해달라더라."

그때가 1969년이었다고 했다. 문경으로 왔을 때였다. 한약 사발처럼 생긴 사발을 만든 지 2년째. 비싼 가격으로 일본에 팔린다는 걸 알았다. 주문자와 거래를 했다. 월급여도 45만원까지 올랐다. 1971년 서울 여의도에 준공된 59㎡ 규모 아파트의 분양가격이 212만원이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챙긴 셈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그래도 그런 사발을 비싼 가격에 팔게 해줬으니 그것도 대단한 일이었다. 그때부터 도예가들의 입지가 달라졌다."

도자기가 예술의 경지에 올라 있음을 깨닫게 된 백 옹은 가치 있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1979년부터 대구공전에서 10년간 학생들을 지도했다. 가야토기의 재현이라는 목표를 세웠다. 고령에 자리를 잡은 것도 그 영향이었다.

"60년 넘게 한 우물만 팠다. 돈도 벌 만큼 벌어봤지만 결국은 명예다. 차를 즐기는 사람들, 다도인(茶道人) 사이에서는 이제 유명인사라는 자부심도 있다. 명예를 지켜나가는 건 자신과의 싸움이다. 이게 안 되면 저게 되려나 하지 마시라. 한 가지 일에 몰두해 꾸준히 해보시라. 실마리가 보인다. 고되고 어렵다고 빨리 포기하는 건 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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