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활촌, 새마을운동, 신농촌개발운동.'
여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농촌을 바꾸려는 활동이다. 무대는 달라 앞과 뒤는 베트남이다. 앞은 옛 월남, 뒤는 오늘날 베트남이고, 가운데는 한국이다. 시기도 앞은 월남 전쟁 때인 1960년대, 새마을운동은 1970년대, 뒤는 2010년대이다. 무대, 시기는 다르지만 모두 우리와 얽혀 있다.
신생활촌은 베트남전과 사연이 있다. 베트남은 1954년 프랑스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남북으로 갈려 1960년 전쟁을 시작했다. 미군 참전으로 한국도 1964년부터 파병했다. 북베트남군과 베트콩과의 '추악한 전쟁'에 휘말렸다. 비록 '자유세계의 십자군' 또는 '황색 거인' 등으로 포장됐지만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1973년 철수했다. 호찌민시의 전쟁박물관은 한국 맹호부대 사진 아래 '1965년부터 1973년까지 미군 요청으로 31만2천848명을 보냈고 5천99명이 전사했다'고 기록했다.
그런데 한국군은 미군이 월남 농민의 베트콩과의 연계를 막으려 세운 전략촌이나 신생활촌도 관리했다. 한국군은 월남 농촌과 농민을 돕고 봉사하면서 적과 내통하는 일까지 막아야 했다. 환락의 도시로 '동양의 파리'라 불리던 월남 수도 사이공(현 호찌민시)에서 '남들'은 호사스러운 삶을 누릴 때 적과 싸우며 '월남 농촌 가꾸기 개발사업' 같은 일마저 펼쳐야 했다. 한국 탈곡기로 추수를 돕는 등 여러 활동은 말하자면 월남 농촌의 근대화 활동과도 같았다.
그리고 베트남 철군 즈음, 한국에서는 새마을운동이 벌어졌다. 경북에서 비롯된 새마을운동은 성과를 거두었고 이후 나라 밖까지 전파됐다. 이런 새마을운동을 지금 베트남 정부가 배우고 있었다. 지난 13일 경북도 농어업FTA대책특별위원회(위원장 손재근)와 방문한 베트남 농업연구개발기획청에서도 이를 확인하게 됐다. 이날 응우웬 트롱 우엔 지청장은 "2010년부터 새마을운동의 교훈으로 신농촌개발운동을 하고 있다"며 협조를 바랐고, 손 위원장은 "협력할 일이 많을 것"이라 화답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런 새마을운동이 푸대접이어서 안타까운데 베트남에서 귀한 대접이니 반갑지 않을 수 없다. 시공을 뛰어넘은 농업과 농촌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살피면 새삼스럽다. 특히 목숨을 건 파월 장병의 앞선 신생활촌 활동은 더욱 가슴 아린다. 지난 11일 개막된 '호찌민-경주세계문화엑스포'로 돌아본 3박 5일의 베트남 농촌 방문이 남다르고 베트남 농촌을 위해 파월 장병이 치른 희생을 더욱 기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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