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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광의 에세이 산책] 황금 아기들

김일광 동화작가
김일광 동화작가

외손녀를 돌봐주는 아내를 따라 딸네 집에서 새해를 맞았다. 올해 태어날 아이들은 특별히 황금 개띠라고 한다. 기사를 함께 보던 딸아이가 재미있다는 듯이 한마디했다.

"제가 태어날 때는 무슨 개띠였어요?"

"글쎄."

그러고 보니 36년 전 딸아이를 낳았을 때는 그런 말이 없었다. 온 사회가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표어로 무장되어 있을 때였으니까 띠 앞에 수식어를 붙일 수도 없었다. 아기 낳는 게 마치 국가에 큰 짐을 지우는 것처럼 생각할 때였다. 출산을 막던 그때도 아이를 낳았는데, 요즘은 각종 혜택을 주는데도 아기 출산은 줄어들고 있다. 그래서 띠 앞에 복권 같은 행운의 말을 붙이는 게 아닐까. 붉은 닭, 황금 돼지, 청양 등, 사실 요즘 태어나는 아이들은 그 어떤 꾸밈말을 붙여도 아깝지 않은 귀한 존재가 되었다. 그런데 정작 젊은 부부들은 아이 낳을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다. 취업이 늦어지고, 집값이 하늘처럼 뛰고, 자녀 교육비는 가히 천문학적이다. 더더욱 힘든 문제는 육아가 만만치 않다.

딸이 아기를 낳으면서 소위 말하는 기러기 할아버지가 된 지 2년이 넘었다. 손녀를 돌보느라 딸네 집에 머무는 아내의 수고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어서 결혼한 아들도 고맙게 아기를 얻었다. 1년을 사이에 두고 경사가 겹쳐졌다. 축복에 따른 기쁨만큼 육아는 만만치 않았다. 그나마 돌이 지나면서 어린이집에서 아기들을 맡아주었다. 그러나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아내와 나는 양쪽 집을 오가며 손주를 거두어 주어야 했다. 이런 어려움을 알고 있는 젊은 부부들은 아이 낳을 엄두가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기가 태어나는 것은 신이 아직 인간 세상에 대한 기대를 거두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 스스로 신의 그런 희망을 외면하고 있는 셈이다. 아기가 태어나지 않는 세상은 희망이 없다. 정부는 저출산 정책이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말았다. 우리의 출산장려 정책은 아기를 당당하게 낳고, 안심하고 키울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게 아니었다. 출산 결과에 이런저런 혜택을 주겠다는 지극히 형식적인 것이었다. 젊은 부부가 왜 출산을 망설이고, 많은 자녀를 갖지 못하는 걸까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

이제 육아를 한 가정에 오롯이 맡겨두는 우리네 사회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육아는 우리 사회 공동의 몫이 되어야 한다. 당당하게 아기를 낳고 키울 수 있는 직장 분위기 변화가 출산장려의 시작이다. '한 마을에 불행한 사람이 있으면 마을 전체의 책임이고, 아이 하나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 아프리카의 격언이다. 그들의 지혜가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황금 개띠, 새해가 밝았다. 생명을 어찌 황금에 비할 수 있을까마는 이 땅에 태어난 아이들과 올해 태어날 아기들 모두 귀하디 귀한 대접을 받는 사회가 되었으면 참 좋겠다.

김일광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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