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시윤의 에세이 산책] 저녁이 있는 풍경

박시윤 수필가
박시윤 수필가

집 안이 휑하다. 형광등 불빛이 무의미하게 쏟아지는 거실엔 부재중인 가족들을 대신해 TV가 인기척을 내고 있다.

종일 음식을 준비했다. 시어머님과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과 아이들이 좋아하는 요리를 고르게 장만했다. 오늘 저녁 밥상은 꽤 푸짐하겠다 싶어 뿌듯했다. '엄마 웬일이야? 누구 생일이야?' 하며 눈이 동그래질 아이들과 내 요리를 맛있어할 시어머님과 남편을 생각하니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저녁에 일찍 오세요." 남편과 출타하신 어머님께 그러겠다는 답을 들은 후에야 막바지 정리를 했다.

살어둠이 죽은 듯 집 안으로 숨어들었다. 나는 불도 켜지 않은 거실에서 가족들을 기다렸다. 전화가 울렸다. 남편은 일이 끝나지 않아 늦을 거라 했다. 고등학생인 큰아이는 학원 보강수업이 있다 했다. 어머님은 나와의 약속을 까맣게 잊고 지인들과 식사를 하셨다 했다. 작은아이는 소파 위에서 스르르 잠이 들었다. "저녁 먼저 먹어!" 다들 그렇게 내게 말했다.

섭섭함과 쓸쓸함이 교차한다. 기분 탓일까. 언제부터 가족들이 조금씩 멀어지고 있는 듯했다. 큰아이의 학교생활을 들은 지 오래됐고, 남편이나 어머님의 바깥 생활을 듣거나 내 이야기를 한 기억도 오래됐다. 한 끼 밥마저도 함께 먹을 수 없을 만큼 바쁘게 살아야 하는 건가. 바쁜 중에 우리는 서로 단절되고 있는 걸까. 우리 집은 주말 저녁만큼은 가족들과 함께해야 한다는 무언의 규칙이 있었다. 꼭 지켜야 할 약속처럼 모두 해가 저물면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빨리 가고 싶은 곳, 늦으면 미안해지는 곳, 집은 그런 존재였다.

어렸을 적, 어머니는 밥상을 차려놓고 출타한 아버지를 기다리곤 하셨다. 찬바람이 들고, 해가 저물면 샛별이 반짝거리는 신작로를 수십 수백 번씩 내다보셨다. 밥상 위 찌개가 다 식어가도 아버지가 오시기 전까지는 숟가락조차 들 수 없었다. 우리는 배고픔을 참으며 꾸벅꾸벅 졸곤 했다. 아버지의 늦은 귀가에 그제야 동그란 밥상을 가운데 두고 여섯 식구가 빙 둘러앉아 저녁을 먹었다. 아버지는 늦은 귀가에도 저녁만큼은 가족들과 드셨다. 다 식은 밥이지만 첫술을 덜어 장손인 오빠를 시작으로 4남매의 밥그릇에 한술씩 얹어 주시곤 하셨다. 그것이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베푸는 사랑의 증표였으리라.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아버지는 우리들의 중심이었고 우리들은 아버지의 중심이었다. 그러기에 가족과 함께 밥을 먹는 것은 모두가 예의로 지켜야 할 숙명 같은 것이었다.

가정을 이루고 살면서 가족들에게 베푸는 내 사랑의 증표는 무엇이었을까. 밥조차 함께 먹을 수 없을 만큼 우리가 바쁘게 좇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부족함 없이 꽉 채워진 도심의 중심에서 텅 빈 느낌의 한기가 든다. 차가운 계절이다. 살갑게 나누는 저녁 시간이 그립다.

열한 시가 다 되어 큰아이가 돌아왔다. 늦은 시간이지만 아이는 맛있게 밥을 먹었다. '내 사랑의 증표에 응답해준 아들 고맙다.' 나는 오랫동안 비워진 그릇들을 치우지 못한다.

박시윤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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