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로세토 마을은 공동체의 선(善)을 믿었고 실천했다. 술·담배 소비율이 높고 비만 인구도 여타 마을에 비해 많으나 유독 심장병으로 죽는 사람이 적었던 로세토. 이곳 주민들은 따뜻했고 친절했으며 계층 없는 소박한 사회를 일궜다.
부모가 죽으면 이웃들이 아이를 돌봐준다는 무언의 약속이 있는 공동체였고, 극히 적은 임금을 받는 채석장 인부들을 위해 기꺼이 신부가 나서서 임금 인상을 이끌어 내는 패밀리즘이 있었다. 이웃들이 가난한 이들의 시린 마음을 온전히 채워주는, 말 그대로 '하나'였다. 개인의 위기에 마을은 공감했다. 함께 고민하고 대처해 온 공동체가 개인의 몸과 정신을 구한 셈이다.
'공동체'라는 말은 원론적이지만 분명 아름다운 말이었다. 힘든 일을 서로 거들며 품을 지고 갚던 품앗이가 있었다.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마을 기업 등 지역공동체 활성화라는 공통의 목적을 품은 업체들이 속속 등장했다. 말 그대로 공공의 생활공간에서 상호작용하며 유대감을 공유하는 선(善)의 선(先)순위였다. 공동체가 품은 함의(含意)다.
나 역시 그랬다. 지난 5년간 '상생과 협력'이라는 회사 기조를 버린 적이 없다. 작은 규모의 중소기업을 운영하면서도 다른 이들과 공생한다는 작은 자부심을 갖고서 힘들지만 여기까지 왔다. 쇼맨십이라 치부될지언정 봉사했고 기부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저 함께하자는 작은 다짐들이 지금 와서는 가장 부각할 수 있는 회사 이력이 돼버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지난해부터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의 소위 '경제적 공동체'라는 키워드가 뜨거운 감자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뜨거웠던 여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수백억원대 뇌물 공여 혐의를 놓고 박영수 특별 검사팀과 삼성 측 변호인단은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삼성과 최순실의 경제적 커넥션에 의혹을 품은 것이다. 정의사회의 최후의 보루로 일컬어지던 검찰은 정권과의 운명 공동체로 퇴색해버렸다. 이런 상황에 공동체라는 말을 언급하기란 이래저래 겸연쩍어졌다.
젊은 층 사이에선 1인(일인)과 경제를 뜻하는 이코노미(economy)의 합성어 '일코노미'가 신조어로 등장했다. 아울러 공동체란 부정과 비리를 오롯이 품은 이른바 '적폐'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렸다. 개인화되고 있는 한국사회의 슬픈 섭리를 설명하는 단상이다.
부정으로 점철된 공동체 회복에 정부는 응답해야 한다. 폭행하고 인분을 먹인 '인분 교수',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의 '땅콩 회항', 최악의 국정 농단 '최순실 사태' 등 사회에 만연한 온갖 기득권의 무례하고 뻔뻔한 행태가 반복돼서는 안 된다. 현실을 망각한 채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인천 초등생 살인 피의자에게 공동체란 없었다.
혼자가 편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정부는 공동체 사회에 대한 소속감이 결여된 개인들에게 다른 사람과의 지속적인 상호지지와 같은 사회적 관계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내가 속한 공동체가 나를 보호해 주리라는 확신, 내가 위기에 처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함께해 줄 것이라는 자신감은 척박한 세상에서도 힘겹지만 다시금 삶을 꾸려 나가는 원동력이다. 이런 사실을 일깨워 줄 책임과 의무가 정부에게는 있다. 공동체 본연의 미덕을 되찾아야 할 때다.
나는 무모하다. 모두가 도외시하는 지역주택조합을 놓지 않고, 회생 불가한 사고사업장을 기웃거리며 리스크를 잔뜩 키운다. 그래서 이윤추구의 모토로는 낙제점을 받는 오너다. 하지만 공동의 힘으로 내 집 마련을 영위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사고 시설을 떠안고 절망에 빠진 동종업계 관계자들과 그저 상생하고자 한다. 우리 모두를 더한 것보다 성숙하고 현명한 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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