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가마솥과 번철(燔鐵), 개다리소반은 집집마다 흔했던 생활용품이다. 하지만 한국전쟁을 거치고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우리 주변에서 빠르게 사라졌다. 가족이 둘러앉는 겸상 문화가 보편화하면서 소반이 먼저 자취를 감췄다. 또 전을 굽거나 고기를 볶을 때 쓰는 번철 조리도구와 무거운 무쇠솥은 1960년대 들면서 주거문화 변화로 우리 일상에서 밀려났다.
소반을 대체한 것은 값싸고 가벼운 3, 4인용 알루미늄 밥상이다. 어려운 시절이라 서민 가정은 대개 양은으로 된 밥상을 썼다. 중산층 이상 가정은 옻칠상이나 화려한 자개상을 선호했다. 각종 식기류도 놋그릇이나 도자기에서 양은그릇과 스테인리스 제품으로 빠르게 바뀌었다.
이 같은 시대 흐름은 1960, 70년대 대구 경제에도 영향을 줬다. 당시 대구의 대표 업종을 꼽자면 섬유와 비철금속이었다. 기계와 금속가공, 도금 등 흔히 '뿌리산업'으로 통하는 비철금속 산업은 알루미늄 등 경금속을 가공해 만든 생활용품 비중이 컸다. 당시 대구에는 크고 작은 경금속 공장들이 가동됐다. 대표적인 기업이 남선알미늄과 선학알미늄이다. 롯데그룹과 사돈을 맺은 선학알미늄은 수십 년간 침산동 공장에서 각종 양은그릇과 전기밥솥을 생산했다. 1947년 남선경금속공업사로 출발한 남선알미늄도 방촌동 압출공장에서 '거북선표' 주방용품과 알루미늄 섀시로 명성을 떨쳤다.
한때 대세였던 양은이 그 빛을 잃은 것은 1980년대 들면서다. 그러다 IMF 사태로 불황이 닥치자 스테인리스 그릇의 절반 값인 양은그릇이 화려하게 부활했다. 3공단과 성서공단 내 몇몇 업체에서는 지금도 양은그릇을 만들어낸다.
양백(洋白)으로도 불리는 양은(洋銀)은 열전도율이 뛰어나고 가벼우면서도 부식에 강하다. 원래 구리와 아연, 니켈의 합금을 뜻하지만 지금 양은그릇은 모두 알루미늄이다. 그런데 알루미늄 양은 냄비로 산도나 염분이 높은 음식을 만들면 알루미늄 성분이 녹아 인체에 흡수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또다시 나왔다.
결론은 '인체에 해로운 수준은 아니나 조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고가 제조업체에는 자칫 치명타가 될 수 있다. 값싸고 관리하기 편한 양은을 포기하느냐, 아니면 '서민의 그릇' 위상을 지켜가느냐 그 갈림길에 선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게 바뀌게 마련이다. 하지만 소비자도 기업도 모두 만족하는 좋은 방법은 없는지, 고민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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