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60대 중년이라면 통기타에 대한 향수가 많을 것이다. 학창시절 친구들과 함께 통기타를 둘러메고 계곡이나 해변으로 떠나곤 했었다. 별빛이 쏟아지는 밤하늘, 모닥불 피워 놓고 남녀 학생이 빙 둘러앉아 통기타 연주에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불렀던 기억들. 통기타의 애절한 멜로디는 뜨거운 청춘의 가슴을 울리기도 하고 달래기도 했다. 새우깡 안주에 맥주 한잔을 곁들이면 최상의 낭만 축제로 여겼다. 당시 기타 연주자는 멋을 먹고 살았다. 기타만 칠 줄 알아도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특히 여학생 기타리스트는 뭇 남학생들이 사귀고 싶어하는 1순위였다.
요즘도 옛 향수를 떠올려 통기타를 치는 중년 모임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대구 수성구 시지에서 활동하는 어울림통기타동호회도 통기타 선율이 그리워 뭉쳤다. 매주 수'토요일 통기타를 즐기는 그들의 낭만적인 속살을 들여다 봤다.
◆봄비…통기타 선율에 젖는 봄
지난달 31일 오후 7시 대구 도시철도 2호선 신매역 부근 음악연습실. 통기타 회원 10여 명이 모였다. 이날은 어울림통기타동호회가 음악 연습을 하는 날이다.
밖에는 촉촉한 봄비가 내려 거리를 적시고 메마른 가로수는 비를 맞아 생기가 돌았다. 회원들은 의자에 둥글게 앉아 통기타 연습 대열을 갖췄다. 곡목은 비 오는 봄과 관련한 노래로 연습을 하기로 했다. 악장인 권건우(47) 씨가 '봄비' 곡목을 선택했다. 10여 대의 통기타가 일제히 음을 냈다. '봄비 속에 떠난 사람, 봄비 맞으며 돌아왔네, 그때 그날은 그때 그날은, 웃으면서 헤어졌는데~' 회원들은 감미로운 통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했다. 남성의 굵직한 음과 여성의 가냘픈 음이 합해져 애절함이 더욱 느껴진다. 6현을 타고 울리는 통기타의 하모니는 작은 빗방울이 되어 가슴을 때리는 것 같다. '오늘 이 시간 오늘 이 시간, 너무나 아쉬워 창밖을 보네~' 노래는 클라이맥스를 찍고 다시 음이 조용하게 흘렀다. 봄 노래와 관련한 통기타 연습은 2시간 동안 계속되고 나서야 마쳤다.
◆학창시절 배운 기타, 내 마음의 힐링
어울림통기타동호회 회원들은 반주기를 사용 안 하는 진짜 통기타를 좋아하는 마니아들이다.
경찰 공무원인 권건우 악장은 고등학교 시절 기타 밴드부 활동했다. 직장 관계로 잠시 쉬다 40대 초반 다시 기타줄을 잡았다. 그는 "통기타 음색은 자연의 소리같아 마음이 편안하다"고 했다. 대구대 교수로 재직하는 이채욱(61) 회장도 고교생 시절 기타를 쳤다. 학급 대항전에 출전할 만큼 실력파였다. 그는 "나이 들어 기타 향수를 잊지 못해 동호회에 들어왔다"며 "노래에 집중하고 있으면 마음이 저절로 힐링된다"고 했다.
미군부대에 근무하는 허진(57) 부회장은 6남매가 모두 기타를 쳤다. 노래는 좋아했지만 혼자만 기타를 못쳐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10년 독학으로 기타를 배웠다. 그는 "통기타는 나홀로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악기"라고 자랑했다. 임금순(50) 총무와 장순태(52) 부회장은 덕원중 어머니 합창부에서 만나 기타를 배웠다. 임 총무는 뒤늦게 기타에 빠져 타이틀곡 '그대 진정 모르실테죠'를 포함, 6곡 미니앨범을 준비하고 있다. 장 부회장은 "여자가 통기타 치면 너무 멋져보여 기타를 치고 있다"고 했다.
◆통기타에 얽힌 잊지 못할 나만의 추억
어울림통기타동호회 회원 중에는 통기타로 웃고 울었던 추억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손용조(64) 회원은 학창 시절 친구들과 기타를 둘러메고 포항해수욕장에서 놀았다. 예쁜 여자분들에게 끌려 유람선을 타고 울릉도까지 따라갔다. 모래 속에 휘발유를 넣고 불을 피워 캠프파이어를 즐겼다. 한참 분위기가 무르익는데 여자들이 집에 가야 한다며 모두 떠났다. 남학생들만 덩그러니 남아 정말 황당했다. 신복실(48) 회원은 중학교 행정실에 근무할 때 직원들끼리 기타 동아리를 만들었다. 방과 후 학생들과 노래로 친밀감을 쌓은 것을 잊지 못했다. 그는 이런 기타 감성으로 올해 아세아문예에 시인으로 등단했다. 경산시청 공무원 출신인 이상인(64) 회원은 2012년 퇴직 후 기타의 매력에 빠졌다. 그는 늦은 밤 아파트에서 기타를 치다 민원에 시달렸다. 그래서 아예 산 속에 들어가 어두운 밤에 혼자 마음껏 기타를 치며 즐기고 있다고 했다. 경산과학고 교사인 김종열(55) 전 악장은 2016년 전교생 24명인 성주의 작은 중학교에 근무했다. 학생들에게 기타를 가르쳐 학예발표회를 열었던 것을 아름다운 추억이라 했다.
◆버스킹 계절, 시민에 통기타 선율 전해
어울림통기타동호회는 3월부터 11월까지 버스킹 계절에는 시민들에게 주옥같은 통기타 선율을 전해주고 있다. 소그룹 3, 4팀을 구성해 매달 팀별로 장소를 정해 1, 2회 버스킹 공연을 갖고 있다. 남녀혼성 '투카포' 팀은 4월 중에 수성못 공연을 신청해 둔 상태다.
어울림통기타동호회 회원 모두가 참가하는 전체 공연은 매년 8~9월 대구스타디움 공연, 4~5월 김광석거리 공연 등 두 차례 개최하고 있다. 대구스타디움 공연은 7, 8개 팀을 구성해 팀별 3, 4곡의 7080 노래를 선사하고 있다. 한여름 통기타 선율로 무더위를 식혀주고 있다. 김광석거리 공연도 이와 비슷하게 진행하고 있다.
이채욱 회장은 "회원 전체 공연에는 음악을 좋아하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줄을 잇고 있다. 관객들도 흥겨워 춤도 추고 노래를 따라 불러 마치 무대를 함께하는 분위기가 연출된다"고 했다. 전체 공연에는 봉사활동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모금함을 설치해 사랑의 돈도 모으고 있다. 어울림통기타동호회는 2015년 경산시민회관 대강당에서 수능을 마친 고교생 1천 여 명을 초청해 수험생 위로 음악회를 열었고 2017년 대구컬러풀축제에 중구 대표로 참가해 대상을 받기도 했다.
◆정기적으로 공연 봉사 펼쳐
어울림통기타동호회는 2011년 6월 회원 5명으로 결성됐다. 초대회장은 박규장(56) 대건고 교감이 맡았다. 어울림은 현재 회원이 31명으로 늘어났다. 나이는 40~60대 초반으로 대부분 교사, 경찰, 행정 공무원이거나 퇴직자다. 어울림은 회원들의 통기타 실력이 뛰어나고 서로 화합이 잘되고 있다. 전용연습실을 갖추고 매주 수토요일 연습을 하고 있다.
매달 개인 연습곡 발표회를 하고 전체 공연은 연 2회 갖는다. 연말에는 가족, 지인을 초청해 개인 장기자랑 송년 공연을 갖는다. 또 MT 체육대회를 비롯해 회원 회갑연 발표회도 하고 있다. 회원들은 통기타 외에 난타, 우쿨렐레, 하모니카, 색소폰 등 다양한 재능을 갖고 있다. 각기 재능을 서로 나누고 있다.
어울림은 음악봉사 활동을 많이 하고 있다. 3, 4명이 팀을 만들어 요양원, 재활원 등 복지시설을 찾아 노래를 선물하고 있다.
장순태 부회장이 소속된 '또박이'팀은 남자 2명, 여자 2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매달 1회 자유재활원을 찾고 있다. 또박이팀은 40분 정도 기타를 치며 재능기부를 하고 제기 만들기 등 놀이도 해주고 있다. 요양원에는 비정기적인 봉사를 한다. 두 달에 한 번씩 동화사 자비원을 방문해 통기타 공연 봉사를 하고 있다.
임금순 총무가 소속된 '투카포'팀은 남녀 4명으로 구성된 혼성중창팀이다. 매달 1회 연호동에 위치한 무료급식소를 찾아 통기타 공연 봉사를 하고 있다. 통기타 공연은 점심 식사 전에 30분 동안 펼친다. 투카포팀은 어르신들과 식사를 함께하며 말벗이 되어주기도 한다. 또 신청곡을 받아 다음 공연 때 들려주고 있다. 임 총무는 개인적으로 다른 동호회 난타팀과 함께 요양원 공연 봉사를 하고 있기도 하다.
허진 부회장이 소속한 '소리나무'팀은 남자 4명으로 구성돼 있다. 고산에 위치한 요양원에 연간 4회 방문해 통기타 선율을 선사하고 있다. 소리나무팀은 1시간 동안 노래를 부르고 마지막 곡은 항상 '부모'를 부른다. 봉사자, 어르신 함께 눈물을 흘리는 진한 감동을 자아낸다. 요양원 방문 땐 음료수를 사들고가 어르신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
李대통령, 남아공 대통령·호주 총리와 정상회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