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교칼럼] 가상현실

인터넷은 가상세계를 열었다. 우리는 긴밀한 소통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간다. 꿈의 세계가 열린다. 손끝으로 터치만 하면 전 세계의 폭포가 눈앞에 와 있고, 꽃이란 꽃은 다 감상할 수 있고, 웬 나비가 그렇게 화려하고 아름다운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원하는 음악을 마음껏 들을 수 있는 음악세계가 열린다. 손끝으로 터치하면 우리의 목소리가 광장에서 외치는 소리가 되어 세상에 퍼져 나간다.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가 우리의 손바닥에 와 있다.

오랜만에 동창들을 만났다. 한 친구가 시국에 관해 열을 토하며 말했다. 그는 가짜 뉴스로 만들어진 가짜 세계에서 온 듯했다. 다른 친구들은 아연실색하며 할 말을 잃었다. 재치 있는 친구가 화제를 급하게 다른 데로 돌리고 나서야 어색한 분위기가 해소되었다.

나는 이 사건 이후로 가짜 뉴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는 말이 있다. 때로는 이 말이 얼마나 멀리 갔다가 돌아오는지 3년 전의 가짜 뉴스가 토씨 하나 변하지 않고 그대로 돌아올 때도 있다.

가짜 뉴스는 오해로 인해서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다. 의도를 가지고 치밀한 기승전결을 만든다. 상징과 함축과 비유, 구호를 적절하게 이용한다. 누군가 이 가상현실을 이용하여 어떤 유익을 얻으려는 의도다. 거짓말이 선할 리가 있는가? 거짓말을 사용하여 대상을 혐오스러운 색으로 칠하고, 이념의 낙인을 찍고, 비인간화하고, 악마화하고 증오한다. 가짜 뉴스의 간단한 판별법은 '긴급뉴스, 무슨 파를 사수하자. 무슨 파를 박멸하자'는 구호, 증오와 조소의 내용이 있는가이다.

목사로서 한 교회를 지키기에도 힘이 벅찬데, 무슨 파를 사수하라니 나로서는 역부족이다. 성직자에게 증오의 메시지를 보내는 용기도 발칙스럽다.

나는 개인적으로 삼진아웃제를 도입했다. 내게 가짜 뉴스를 세 번 이상 보내면 나는 가차없이 그를 차단한다. 가짜 뉴스를 퍼 나르는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구차스레 보일까를 염두에 두라.

내가 가짜 뉴스를 싫어하는 이유는 가장 먼저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이다. '나를 어떻게 보았기에 이런 가짜 뉴스를 읽고 동조하거나 키득거리며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이런 가짜 뉴스로 내게 영향을 미치려고 시도하는가?' 거짓말로 내 마음속에 어떤 사상이나 생각을 주입하려고 했다면 내 마음의 도둑이다. 내 마음의 주머니에 슬쩍 들어온 검은손이다. 결국 나는 범행 대상이 된 것이다.

가짜 뉴스는 나 개인의 자존심뿐만이 아니라, 내 페르조나(사회적 자아)의 품격에도 손상을 줄 것이다. 거짓말을 가지고 성직자에게 증오와 미움을 부추긴다면 말이 되는가? 성직자에게 거짓말이라도 사랑과 평화와 화해의 말을 하고, 자비의 시늉이라도 보여야 예의가 아닐까?

우리가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와 미디어를 통해서 가상현실을 경험하고 있는데 이 가상현실이 천국 같은 현실이면 좋겠는가? 지옥 같은 현실이면 좋겠는가? 당연히 천국 같은 현실을 우리가 만들어 나가야 하겠다. 가상현실이 현재는 보이지 않지만 언젠가는 꽃피울 찬란한 미래를 미리 보여주면 어떨까?

가짜 뉴스를 가지고 아름다운 현실을 만들 수 없다. 편 가르고 증오를 심는 가짜 현실에 속지 말자. 인터넷 게시판 댓글로 인해 상처 받는 일은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 증후군의 공간이 아닌 치유의 공간으로 가꾸자. 격려와 용기를 북돋워주는 회복의 공간으로 가꾸자. 생명의 기운이 움트는 광장으로 만들어보자. 이해와 화합의 공간으로 만들어보자. 가상현실을 악몽의 세계가 아닌 꿈의 세계로 가꾸자. 가상현실을 희망찬 세계로 가꾸자! 얼마 후 현실이 될 것이다.

가상현실을 가짜 현실로 만들지 말자. 가상현실을 최상의 현실로 만들자.

박병욱 대구중앙교회 대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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