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러시아, 남북에겐

정인열 논설위원
정인열 논설위원

"무력과 자금을 지원해 주면…일본과 싸워서 조선을 광복시키겠으니 꼭 좀 도와 주시오." "그대는…천도교인들을 중심으로 한 공산당을 조직하면 자금은 원하는 대로 제공하겠소." "조선 천도교도가 300만 명인데 한 사람당 1원씩만 내어도 300만원(현 161억원 추정)입니다. 이를 담보로 무력과 자금 지원을 미리 해주면 좋겠소." "의논하여…답변을 주겠소."


1919년 31운동 좌절 뒤 9월 하순, 독립운동가 최동희(1890년)는 20살 위의 러시아 혁명지도자 레닌(1870년)을 만나 담판했다. 러시아 혁명(1917년) 성공 뒤 레닌이 식민지 약소민족들에 우호적일 때다. 독립운동 돌파구를 찾던 최동호의 레닌 방문은 그래서였다. 특히 이날 분위기는 레닌이 최동희가 이미 러시아에 알려진 동학혁명 지도자 최시형 아들인 사실을 안 탓에 남달랐다.(최정간, 해월 최시형가의 사람들)


러시아 힘을 빌리려는 뜻은 임시정부도 같았다. 통합 임정 출범과 함께 국무총리 이동휘 역시 레닌 정부와 접촉해 1921년 200만루블 지원을 약속받아 일부는 받았다. 최동희 요청 이후 러시아 지원이 2년 뒤 성사된 셈이다. 갓 출범한 임정은 턱없는 재정에 허덕인 탓에 레닌 정부 지원 같은 외부 재정도 귀할 수밖에 없었던 터였다.


러시아와는 이런 선(善)한 일보다 반대 인연이 더하다. 특히 1945년 8월 9일 대일(對日) 선전포고 뒤 22일 평양 진주와 통치권 접수로 빚어진 불행이 그렇다. 북한 점령과 김일성 등장, 625전쟁, 3대 부자 세습 악몽은 꾸고 싶지조차 않은 악연이다. 게다가 소련의 1962년 영변 원자력연구소 설립 지원 등에 힘입은 핵 개발은 지난해 9월 6차 핵실험까지 이어져 핵 공포에 떨게 했다.


이런 러시아가 남북에 다른 모습이다. 푸틴 대통령이 9월 블라디보스토크 개최 동방경제포럼에 한국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함께 초청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22일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에, 김 위원장은 지난 14일 월드컵 개막식에 온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통해서였다. 도는 공처럼 인연과 악연도 그런 모양이다. 하지만 악연만큼은 이제 끝나길 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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