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흥길 작가의 소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연작에는 '날개 또는 수갑'이라는 작품이 있다. EBS 수능 연계 교재에도 실려 있는 이 작품은 회사의 제복 착용 방침을 두고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1970년대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사원들은 제복이 개성을 위축시키고 자유를 퇴보시킬 것이라며 회사의 방침에 반발하며 다방에서 대책 회의를 한다. 회사 잡역부로 있으면서 산업 재해로 팔이 잘린 소녀를 위해 회사와 싸우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권씨가 보기에 그들의 논의는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회사의 방침은 변함이 없고, 가장 강하게 반발했던 수습사원 우기환은 퇴사를 하고, 소극적으로 동조했던 이들은 제복을 수용한다. 반대편에 앞장섰던 민도식은 창업 기념일에 전 사원이 제복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보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 있게 된다.
이 소설의 제목인 '날개 또는 수갑'에 대해 대부분의 교과서나 강의에서는 제복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한다. 옷이 자유로움을 상징하는 날개가 될 수도 있지만, 수갑처럼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석하는 것도 큰 문제가 없지만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진짜 '날개 또는 수갑'은 사람들의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 소설에서는 두 종류의 말이 나온다. 소녀의 팔을 위해 싸우는 권씨의 말은 절실함이 있는 것이지만, 제복을 반대하기 위해 싸우는 이들의 말은 보이지 않는 정의를 이야기하는, 약간은 허세가 있는 말이다. 절실함이 있는 말은 우리 사회에서 억울한 이가 없도록 만드는 날개가 되지만, 허세가 있는 말은 자기가 한 말 때문에 스스로 부자유스러울 수밖에 없는 수갑이나 족쇄와 같은 것이 된다. 소설 속에서 민도식이 제복을 입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제복 때문에 퇴사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된 것은 모두 그가 했던 말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억울한 이들이 없도록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말은 소신껏 이야기를 해야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렇지만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훈계하는 말,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하는 대안 없는 반대의 말은 자신을 부자유스럽게 만들 수 있다. 그런 말들은 하면 할수록 자신에게 수갑 혹은 족쇄로 작용해서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특히 다수의 사람들을 상대로 말을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말이 입으로, 글로 세상에 나오는 순간 다수의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한 말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 무거운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대구 능인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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