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난감으로 전락한 체험시설 동물들…관람객 건강도 위협

사육환경 열악한 동물체험시설 태반…법적 기준 강화하고 허가제로 전환해야

지난 9일 방문한 대구의 한 실내동물체험시설 안에 있는 흰 사자 두마리는 비좁은 우리 탓에 거의 움직이지 못하고 앉아만 있었다.
지난 9일 방문한 대구의 한 실내동물체험시설 안에 있는 흰 사자 두마리는 비좁은 우리 탓에 거의 움직이지 못하고 앉아만 있었다.

어린이·가족 관람객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대구의 동물 체험시설 중 상당수가 안전이나 위생, 사육환경이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관람객과 동물이 별다른 경계없이 접촉하고, 최소한의 사육환경조차 보장되지 않는 체험시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9일 오후 대구 한 실내동물원. 입구를 지나자 사육사 팔에 앉은 대형 앵무새가 관람객을 맞이했다. 앵무새는 사육사와 관람객의 팔을 오갔고, 아이들은 앵무새의 등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사육사는 "하루 종일 손님들 팔에 올라가는 걸 반복하니 스트레스를 받긴 한다. 그래서 장난감으로 많이 놀아주려고 한다"고 했다.

친칠라쥐나 페럿(족제비과 포유류), 도마뱀 등 정서적인 교감을 위해 체험용 동물은 끊임없이 관람객의 손을 탔다. 직원들은 비단구렁이 등 파충류를 여성 관람객이나 아이의 목에 감아주는 등 동물과의 접촉을 적극적으로 권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린이가 동물을 만지거나 먹이를 준 손을 바로 입으로 가져갈 경우 질병 감염 우려가 있고, 안전 사고 위험도 적지 않다.

위생 문제는 다른 곳에서도 발견됐다. 이 곳은 동물들과 관람객이 음식을 섭취하는 공간이 구분되지 않은 상태였다. 환기가 되지 않는 실내에서는 동물의 배설물이 분진 형태로 공기에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갇힌 우리에서 지내는 동물들이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일정한 행동을 반복하는 정형행동도 곳곳에서 목격됐다. 1.5m가 넘는 아프리카대머리황새는 머리에 난 상처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큰 부리로 유리창을 쪼고 있었다. 수심 600m까지 잠수할 수 있는 잔점박이물범 한 마리는 3m 길이의 수조를 반복해서 오갔다.

잔점박이물범은 3m 길이의 수조를 끊임없이 오가는 정형행동을 보였다. 이 물범은 오른쪽 눈은 백태현상으로 뿌옇게 변해 있었다.
잔점박이물범은 3m 길이의 수조를 끊임없이 오가는 정형행동을 보였다. 이 물범은 오른쪽 눈은 백태현상으로 뿌옇게 변해 있었다.

관람객 한정인(36) 씨는 "복합상가 안에 있는 실내 동물원에 사자 같은 맹수들이 있을 줄은 몰랐다. 공간도 너무 좁고 햇빛 한 줌 들지 않는데 괜찮은 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이 같은 상황은 대구에 있는 다른 동물체험시설도 비슷하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가 대구를 포함해 전국 20곳을 실태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대구의 동물체험시설 3곳 모두 사육 동물들이 반복행동이나 무기력증에 빠져 있었고, 은신처 등 동물의 생태특성을 고려한 사육장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동구의 한 체험시설은 함께 머물수 없는 동물을 합사해 두거나 체험용 먹이를 구분하지 않고 마구 판매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달성군 동물체험시설도 먹이 양을 제한하지 않고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했고, 체험사를 관리하는 인원도 없었다.

법적 사각지대도 넓다. 대구시에 등록된 동물체험시설은 모두 5곳이지만, 실제로 영업을 하고 있는 시설은 7곳 이상으로 추정된다. 법적으로 10종, 50마리 미만의 동물을 전시목적으로 사육할 경우 등록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이형주 어웨어 대표는 "사자 같은 맹수류를 햇빛 한 줌 없는 좁은 실내공간에 전시하는 것 자체가 비정상적"이라며 "생태적 특성에 맞는 사육환경과 관리에 대한 기준을 의무화해 서식환경과 관람객 건강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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