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은행 간부의 여직원 성폭행 무죄 판결 논란…여성단체 거센 반발

‘재판부의 성인지적 관점 부재’ vs ‘검찰의 무리한 수사’ 충돌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이 성범죄 사건을 무죄 판결한 재판부를 규탄한다는 집회를 14일 오전 대구지법 서부지원 앞에서 개최했다.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제공.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이 성범죄 사건을 무죄 판결한 재판부를 규탄한다는 집회를 14일 오전 대구지법 서부지원 앞에서 개최했다.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제공.

'미투(me too·성범죄 피해 고백)'일까, '힘투(him too·성범죄 무고 피해)'일까?

최근 비정규직 직원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지역 모 은행 직원이 무죄로 풀려나면서(본지 1일 자 8면 보도) 지역 사회에 거센 논란이 일고 있다.

성범죄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사법부의 편견이라는 여성계의 주장과 남성 피의자를 범인으로 몰아가는 수사 관행을 돌아봐야한다는 반론이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전국여성노동조합 대구경북지부는 14일 대구지법 서부지원 앞에서 집회를 열고 비정규직 직원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은행 직원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재판부를 규탄했다.

여성단체들은 '피해자다움'을 강조하는 재판부의 지독한 편견이라고 반박했다. 재판과정에서 피해자는 "계약직이다 보니 인사를 좌우할 수도 있는 과장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모텔에서 나체 사진을 찍었을 수도 있는데다 회사에 안 좋은 소문을 낼 것 같았다"고 진술하는 등 가해자가 두려워 적극적으로 피해를 알리지 못했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낮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가족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고, 성폭행을 당한 날 또다시 피고인과 만나 식사를 하는 등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은 점을 피해자답지 않은 행동이라고 판단했다.

여성단체들은 이번 사건을 심리한 재판부에 대한 불신과 성 인지적 관점의 부재도 지적했다. 성 인지적 관점은 각종 제도나 정책에 포함된 개념이 특정 성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지 않은지, 성역할 고정관념이 개입되어 있는지 아닌지 등의 문제점을 검토하는 관점을 말한다.

신미영 대구여성회 상담실장은 "성 인지 감수성이 없는 판결은 많은 피해자를 침묵하게 만든다"라며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사법부가 정의로 응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잇따르는 성범죄 무죄 판결을 두고 검찰의 수사 관행을 되짚어봐야 하는 의견도 나온다.

여론을 의식한 수사기관이 피해를 호소하는 여성의 진술만으로 남성 피의자를 범인으로 몰아간다는 것이다. 지역의 한 변호사는 "성범죄 사건의 경우 검찰이 유죄라는 심증을 강하게 갖는 편인데, 미투 운동을 거치면서 더욱 심해졌다. 이런 수사 관행은 오히려 성별 갈등을 격화시키고, 사법부 판단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항소를 제기한 검찰 관계자는 "물리적인 폭력이 없었어도 나이가 열살이나 어린 계약직 여성 입장에선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라며 "최근에는 강간, 강제추행 등의 개념도 크게 바뀌는 중이다. 수사기관과 법원도 사회적 변화와 인식에 발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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