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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만세운동 100주년]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서 독립만세∼ 대구경북 80여 곳에 퍼졌다

올해는 3·1만세운동이 일어난지 100년 되는 해다. 대구경북에서는 3·1만세운동 100년과 임시정부수립 100년을 기념해 다양한 행사를 마련한다. 사진은 안동시가 해마다 3·1만세운동을 재현해 열고 있는 모습. 안동시 제공
청도 3·1동지회 창립 기념촬영
올해는 3·1만세운동이 일어난지 100년 되는 해다. 대구경북에서는 3·1만세운동 100년과 임시정부수립 100년을 기념해 다양한 행사를 마련한다. 사진은 안동시가 해마다 3·1만세운동을 재현해 열고 있는 모습. 안동시 제공

1919년 3월 1일. 경술년 국치를 당했던 우리민족은 더 이상 일제의 강점을 용납하지 않고 자주독립 국가임을 만국 동포에게 선언했다.

이날 오후 2시, 민족대표 33인은 태화관에서 선언식을 거행했다. 같은 시각, 탑골공원에서는 정재용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운동을 시작했다.

9월 13일, 통합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실현되기까지 3·1만세 운동은 국권 회복과 민족 정통성을 되찾고자 국내·외에서 일어난 거대한 저항운동으로 기록된다.

대구 시민과 학생, 공무원 등 500여 명이 3·1절을 맞아 대구 중구 3·1 만세 계단에서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만세운동을 재현하고 있다. 매일신문 D/B
청도 3·1동지회 창립 기념촬영

◆한국사 최초 시민사회운동 3·1만세운동

올해는 3·1만세운동이 일어난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3·1만세운동은 1910년 8월 29일 경술년에 일제에 나라를 강제로 빼앗기고 1945년 8월 15일 나라를 되찾기까지의 항일투쟁과 독립운동 과정에서 가장 치열했던 운동이었다.

100년 전 세계는 제국주의가 정점에 달했고 많은 약소국이 식민지로 전락했다. 전 세계인구의 2/3가 열강들의 식민지 쟁탈전에 희생양이 돼 핍박받는 가운데 동방의 작은 나라 조선에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제국주의 저항운동이 벌어졌다. 조선이 자주국임을, 조선민이 자주민임을 만천하에 천명하고 열강에 저항한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전 세계는 경악했고, 동력을 얻은 세계 곳곳에서 식민지 저항운동이 일어났다.

3·1운동은 한반도를 넘어 세계사에 기록될 굵직한 저항운동이었던 것이다.

김희곤 경상북도 독립운동기념관장은 "3·1운동은 한국사에서 최초로 근대국가와 민주공화제를 이룩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는다. 온 겨레가 일어나 '조선이 독립국'임을 선언했고 그 독립국을 군주국가인 대한제국이 아닌 시민이 주권을 가지는 '대한민국'으로 탄생시켰기 때문이다"고 했다. 김 관장은 "또한 3·1운동은 일본 제국주의에 맞선 저항만이 아니라, 세계 제국주의 열강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다. 3·1운동은 독립운동으로 근대국가를 이룩했다는 뜻에서 '독립운동 근대국가 건설론'으로 정리된다"고 덧붙였다.

대구경북지역 만세운동 참가 현황과 시기. 매일신문 D/B
대구 시민과 학생, 공무원 등 500여 명이 3·1절을 맞아 대구 중구 3·1 만세 계단에서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만세운동을 재현하고 있다. 매일신문 D/B

◆서문시장 만세 시작, 대구경북 90여 차례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에서의 만세운동은 대구경북 만세운동에 불을 지폈다. 일제 군경의 특별경계 속에서 기독교계 인사들과 학생들을 중심이 된 대구 만세운동에는 1천 명의 군중이 모였다.

이후 5월 7일 청도군 매전면 구촌동 만세운동에 이르기까지 대구경북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은 두 달여 동안 80여 곳에서 90회가 넘었다.

경북에서는 3월 11일 당시 영일군 포항면의 만세운동이 촉발돼 3월 12일 의성군 비안면으로 이어졌고 이날 선산 인동, 의성 쌍계 등 경북 전역으로 퍼져 갔다.

특히 3월 13일 이상동의 1인 시위를 시작으로 번진 안동의 만세운동은 27일 풍남면(현 풍천면) 하회 시위까지 모두 14회에 걸쳐 1만여 명이 참가하는 경북지역 최대 규모의 시위가 됐다.

3월 17일 영덕군 영해면에서 벌어진 영해시위는 가장 강성했던 만세운동으로 기록된다. 서울보다 17일 늦게 시작됐지만 3천여 명이 참석해 맨손으로 총검으로 무장한 일경에 대항했다. 일본은 이를 진압하고자 울진과 포항의 헌병대와 대구의 군대까지 동원했다. 이 과정에서 시위 군중 8명이 숨지고 16명이 다쳤다.

3·1만세운동이 벌어지던 무렵 안동과 성주를 중심으로 한 경북지역 유림 세력은 파리강화회의에 우리의 독립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보냈고 김락, 남자현 등 여성들의 독립운동도 돋보였다.

국내에서의 독립운동이 힘들어지자 경북인들은 1910년부터 만주에 터를 잡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과 함께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해 직접적인 무력 투쟁에 나서기도 했다.

이는 일제에 대한 반감과 독립에 대한 희망의 싹을 심어줬고 1926년 6월 10일 순종의 장례식을 기해 또다시 일어난 만세시위의 기폭제가 됐다.

제2의 만세운동이라 불리는 6·10만세운동이 진행되기까지 김천의 김단야와 안동의 권오설 등 경북인들의 활약은 핵심적이었다. 독립에 대한 의지는 성인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마음에도 불을 지폈고, 대구 신명여고와 대구보통공립학교, 대구사범학교, 안동 농림학교 등 학교마다 내부에 결성된 비밀결사 조직을 통해서 은밀히 전파됐다.

대구경북지역 만세운동 참가 현황과 시기. 매일신문 D/B

◆독립운동 성지 대구경북 다양한 기념행사

3·1만세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대구경북에서는 다양한 기념행사가 마련된다.

대구시는 '기억과 기념', '발전과 성찰', '미래와 희망' 등 3개 분야로 나눠 모두 15개 사업을 추진한다. 호국보훈의 도시라는 명칭에 걸맞게 올해부터 '대구 애국보훈대상'을 제정해 시상한다.

3·1운동 100주년 우국시인 현창(顯彰)문학제는 대구·안동·서울(종로구) 등지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이상화·이육사·윤동주 등 항일 민족시인 대표 3인의 애국정신을 계승하고 우수 문학인을 발굴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시민이 참여하는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시민추진위원회'도 구성한다. 시민추진위는 독립운동의 성지인 대구의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기념사업, 문화·예술·학술·교육행사, 출판 등을 전개한다.

이 밖에 '범시민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식 및 만세 재연행사'를 대구지역 독립운동 및 항일유적지 부근 10개소에서 동시에 연다.

경북도는 1월부터 독립운동가의 치열했던 삶을 재조명하기 위한 '100주년 기념 라디오 드라마' 제작에 들어간다.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석주 이상룡 선생을 중심으로 경북지역 독립운동가의 치열했던 투쟁과 삶을 담는다.

또 호국선열들의 희생정신을 담은 상징물을 도 내에 설치,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경북의 위상을 높이고 도민들의 자긍심을 끌어올린다.

임시정부 이동 발자취를 따라 독립운동 유적지를 그리고 전시하는 행사도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가 있었던 상하이, 항저우, 전장, 창사, 광저우, 류저우, 치장, 충칭 등 8곳에서 이뤄진다.

구미 인동과 영덕 영해에서는 3월 고유제와 어울림 한마당, 추모행사, 시가지행렬 등 3·1문화행사를 개최해 독립운동가들을 기리고 유공자에 대해 예우를 한다.

관련 학술대회도 진행된다. 경북도청 일대에서는 4월 11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을 전후해 관련 특별기획 전시회와 함께 기념포럼 등이 진행된다. 기념포럼은 '대한민국 100년, 그리고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각계 전문가와 청소년, 도민이 참여한다. 청소년을 대상으로는 역사골든벨과 태극기 만들기 등도 펼쳐진다. 3·1운동과 임시정부에 참여한 경북인들에 대한 기획전시회도 추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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