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선 1단계로 경북기계공고~대구역 9㎞…착공을 하였는데…노태우 대통령을 모시고 1호선 기공식을 개최하였다…사고를 예상했는지는 몰라도…당일…한 업체에서 피우는 연막이 터지지 않았다.'
1991년 12월 7일 대구시 달서구 상인동 경북기계공고 운동장에서 노태우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대구지하철 1호선 기공식이 열렸다. 당시 공구가 5개로 분할됐는데 연막점화 행사 때 공교롭게도 1곳의 연막이 불발(不發)이었다.
이날 불상사(?)가 뒷날 불행의 조짐은 결코 아니겠지만 현장을 지켜본 누군가는 1995년 4월 28일 터진 상인동 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 참사의 전조쯤으로 되짚어보는 계기가 됐다. 앞에 소개한 퇴직 대구시 공직자의 기록을 보면 그렇다.
이날 기공식 연막 불발의 기억처럼, 대구지하철은 조해녕 전 대구시장에게도 악몽이었다. 1995년 상인동 참사 당시, 시장 퇴임 후 시장 선거에 출마해 낙선했고 2003년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 때는 현직 시장이었던 악연 탓이다.
그러나 조 전 시장은 이런 기억하기 싫은 아픔에도 퇴임 이후 대구에 남았다. 퇴임 뒤 대구를 떠나거나 조용한 새 삶을 누리는 안일(安逸)과 달리 대구의 공동체를 위해 궂은일도 맡는 그런 기여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최근 그는 전혀 다른 이야기에 휩싸였다. 바로 대구은행장 인사를 둘러싼 그의 부정적 소문과 역할이다. 풍부한 경험에 균형 감각을 갖춘 그답지 않게 특정 인연에 치우쳤다는 소식으로 안타깝게 하고 있다.
게다가 그가 당초 DGB금융지주 이사회 의장으로서, 지주 회장과 대구은행장의 분리 입장을 바꿔 지주 회장의 은행장 겸직을 말하니 소문은 악화되는 꼴이다. 비록 은행 개혁의 뜻이겠지만 특정 인맥 편향 시각은 더욱 퍼질 뿐이다.
앞으로 조 의장의 대구은행 활동이 어찌 될지 알 수 없지만, 이번 일로 옛날을 한번 되돌아보면 어떨까 싶다. 이번 일이 자칫 또 다른 악몽의 어떤 조짐은 아닐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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