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란 말이 그리 귀에 거슬리나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북한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에 빗댄 것을 두고 청와대와 여당이 강력히 반발했다. "국가원수에 대한 모독일 뿐만 아니라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는 국민에 대한 모독"이라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도 "국가원수모독죄"(이해찬 대표),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하겠다"(홍영표 원내대표)며 발언 취소와 함께 나 원내대표 사퇴를 요구했다.

공감하기 어려운 반발이다. 나 원내대표의 발언은 문재인 대통령이 "더 이상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라는 낯 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란 표현은 지난해 9월 26일 미국 블룸버그 통신이 처음 쓴 것으로, 당시 이 통신은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에서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 됐다"고 보도했다. 나 원내대표는 이를 인용한 것이다.

북핵 문제에 대한 문 대통령의 발언들은 중립적인 견지에서 볼 때 블룸버그 통신의 표현이 과하다고 하기 어렵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5월 27일 남북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면서 "김정은의 한반도 비핵화 의지가 확고하다"고 한 발언이다. 그러나 그 의지는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남북관계 개선이 비핵화를 이끈다며 비핵화보다 남북경협과 대북제재 해제를 앞세우는 것을 봐도 그렇다. 바로 김정은이 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이없는 것은 '국가원수모독죄'라는 비판이다. 1988년 폐지된 이 죄목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 때 국민의 입을 막는 도구였다. 민주화 세력을 자처하는 현 집권 세력이 자신을 비판한다고 권위주의 정권에나 어울릴 위협의 언사를 뱉어내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대북정책에서 문 대통령은 북한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 점에서 나 원내대표의 발언은 야당에 앞서 여당이 먼저 문 대통령에게 해야 할 고언(苦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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