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주전 상서(父主前 上書)

어렸을 때 집안 할아버지 밑에서 천자문을 읽을 때 배웠습니다.
아버지한테 편지를 쓸 때는 '부주전 상서'로 시작하고 마지막 엔 '불초소생 아무개'라 써야 한다고,
배우기만 했지 아직 한 번도 써 본 일이 없는 이 말을 오늘 아버지 돌아 가신지 70여년 만에 처음으로 써 봅니다.
아버지!
오늘 저는 어머님이 혼자 계신 요양원을 다녀왔습니다. 어머니가 계신 강원도 강릉에는 경칩이 지난 지금에도 눈이 하얗게 쌓여 있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6. 25때 강원도 현리전투에서 전사하셨다는 것도, 어머니가 저를 할머님한테 맡기고 개가 하셨다는 것도, 철이든 뒤에서야 알았습니다.
저한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저를 업고 어떤 집에 가서 쇠죽을 끓이는 가마솥 물로 목욕을 시켜준 아물아물한 기억 하나가 있을 뿐입니다.
내년이면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난 지 70년이 되는 해입니다.
어머님이 개가 하셨다는 것을 전하기가 참으로 송구스럽습니다. 깊은 사정은 모르는 일이지만 돌이 채 안된 저까지 남겨두고 떠나가자면 어머니한테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지 않았겠습니까.
어머니는 그동안 강원도 강릉에서 사시면서 새로 만난 남편도 일찌감치 사별하고, 4남매를 두고 지내시다가 그 쪽 가족들도 연로하신 어머니를 모실 형편이 못된다고 연락이 와서 강릉요양원에다 모셨습니다.
저를 18세에 낳았다 하니 금년 어머니 연세가 92세입니다.
아버님께 드릴말씀은 어머니를 용서해 달라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지금 어머니는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어려운 생의 마지막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참 제 이야기를 못했습니다. 저는 아버지 떠나신 후 할머님 슬하에서 자랐고, 어머님 계신 곳을 알았지만 제가 찾아갈 곳은 아니었기 때문에 혼자서 아버지 몫까지 살려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슬하에 남매를 두었고, 그들 밑에 각각 남매를 두어 큰 어려움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아버지!
이제는 기억에도 가물가물 멀어간 아버지의 모습이지만 그립고 보고 싶습니다. 또 6. 25가 다가옵니다. 올해에도 잊지 않고 가솔들과 함께 아버님도 찾아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불초소생 장진수 올림 '전몰군경 유자녀'
주소: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화로 8길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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