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창] 연호(年號)에 집착하는 일본

미래 희망 꽃피운다는 뜻 ‘레이와’
내달 1일 새 천황 즉위 맞춰 사용
日의 특수함을 강조하는 것일까
아베의 국수주의 아니길 바란다

이성환 게명대 일본학과 교수
이성환 게명대 일본학과 교수

1980년대는 일본의 시대였다. 하버드대 교수 에즈라 보겔(Ezra F. Vogel)의 '세계 최고의 일본: 미국을 위한 교훈'(Japan as Number One: Lessons for America, 1979)과, 소니 회장 모리타 아키오와 우익정치가 이시하라 신타로가 함께 쓴 '노(no)라고 할 수 있는 일본'(1989)이라는 두 권의 책이 이를 상징한다(한국에 모두 번역 출간됨). 시차는 있지만 두 권은 미국을 겨냥하고 있다. 전자는 부제가 말하듯이, 추락하는 미국경제는 일본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며, 후자는 미국의 무역흑자 해소 압력에 대해 할 말은 하자는 것이다. 이 일본 예찬론을 배경으로 일본 배우기 열풍이 일었으며, 팍스 니포니카(pax-nipponica, pax-japonica)의 도래를 예견하는 시나리오도 등장했다. 지금의 중국몽(中國夢, pax-sinica)과 미중 무역전쟁과 닮은 구석이 있다.

일본 예찬론은 일본 이질론(특수론)과 다름이 없었다. 일본의 성장은 일본만의 이질적이고 특수한 요인에 의한 것이라는 논의다. 자민당 장기집권, 일본적 경영, 천황제, 일본 문화론 등이다. 일본은 일당 장기집권과 균등한 소득분배, 저항하지 않는 국민을 가진 세계 유일의 성공한 '공산국가'라는 별칭을 얻었다. 이에 대해 일본 연구자들은 일본 보편론을 주장하며, 경제대국이지만 세계에 통용되지 않는 국가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벗고자 했다. 일본 이질론은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가 일본을 '국화와 칼'(1946)이라는 정반대의 이중 상징으로 논했듯이, 일본은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의 나라(enigma of japan)라고 설명한다. 나아가 새뮤얼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1996)에서 세계 문명을 지역별로 8개로 분류하면서 유독 일본만은 하나의 특수문명으로 자리매김했다. 일본 이질론은 19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에 걸쳐 일본과 미국 사이에 '구조장벽협의'(Structural Impediments Initiative)의 갈등을 낳았다. 무역 장벽이 되고 있는 일본의 이질적인 사회 경제구조를 보편적 기준으로 바꿔 무역 흑자를 개선하라는 미국의 압력이었다. 그 후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의 장기불황을 맞는다.

일본과 가장 가까운 한국인들도 '가깝고도 먼' '알 수 없는 일본' 등으로 표현한다. 외국인에게 일본에 대한 이해를 어렵게 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천황제이다. 천황제의 특수성은 어느 나라에도 통용되지 않는 연호 사용에서 잘 드러난다. 세계적으로 보면 이슬람력, 북한의 주체력, 대만의 민국력 등이 있긴 하나 일본처럼 군주 교체 때마다 새 연호를 사용하는 나라는 없다. 일본의 연호 사용은 오랜 관습이나, 현재의 연호 사용의 법적근거는 일본의 우경화와 함께 제정된 1979년의 원호법이다. 이 법은 천황 계승 때 정령(政令: 대통령령에 해당)으로 새 연호를 정한다고 되어있으며, 사용을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공문서의 서식에는 연호만 있고 서력을 쓰는 공간이 없어 실제로는 연호 사용을 강제한다. 기독교 단체에서는 이를 국가가 천황의 지지를 강요하는 행위라고 비판한다.
4월 1일 일본 정부는 '레이와'(令和)라는 새 연호를 발표했다. 지금의 천황이 퇴위하고 5월 1일부터 새 천황의 즉위와 함께 사용한다. 레이와는 겨울 추위를 견딘 매화처럼 내일을 향한 희망을 꽃피우는 나라이기를 소망한다는 뜻이란다. 평화를 명령한다는 뜻으로도 해석한다.

지금까지 연호는 중국의 동양 고전에서 따왔으나, 이번에는 아베 신조 총리의 의지를 담아 처음으로 고대 일본의 시가집인 만엽집(萬葉集)에서 발췌했다. 동양의 보편성이 아니라 일본의 이질성을 강조하는 것일까. 아베와 일본의 국수주의가 아니기를 바란다.

계명대 일본학과 교수/국경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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