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도둑 맞은 미래

송도영 대구파티마병원 진단검사의학과장
송도영 대구파티마병원 진단검사의학과장

출근 전 미세먼지 예보를 보는 게 일과가 됐다. 외출할 때 마스크만 준비하면 될지, 아니면 초미세먼지가 '심각' 수준이어서 외부일정 취소를 결정하기 위해서다.

미세먼지는 마스크만 제대로 착용하면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초미세먼지 앞에서 마스크는 장식품에 불과하다. 초미세먼지는 마스크를 유린하고 들어와 우리 몸의 항상성을 깨트리고 다양한 호흡기질환을 일으킨다. 최근 미국 보건영향연구소가 발간한 '세계 대기 현황 2019'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세계적으로 대기오염에 의해 490만명이나 목숨을 잃었고, 한국에서도 초미세먼지와 오존, 가정 내 공기 오염 등으로 사망한 사람이 1만7천300명으로 추산된다고 발표했다.

화석연료를 무분별하게 사용한 인류는 이전 세대에 없었던 질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고 지구별은 점점 황폐해져 가고 있다. 이제 '푸른 하늘'이 문학작품의 단골 소재가 안될 것 같아 무엇보다 슬프기만 하다. '자연은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후손에게 잠시 빌려온 것'이라는 아메리카 원주민 속담이 있다. 자연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가뜨린 우리세대는 어쩌면 후손의 자연을 도적질한 것이 아닌지.

1996년 테오 콜본 등이 '도둑맞은 미래'를 출간하여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우리나라에도 '당신의 정자가 위협받고 있다'라는 부제가 달려 소개됐다. 화석연료를 마구 태워버리고 무분별하게 비닐제품을 만들어낸 결과, 지구는 신음하고 인류는 불임이나 기형아 출산으로 위기를 맞는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써 내려가고 있다. 어쩌면 인류의 종말은 핵전쟁 때문이 아니라 아기가 더 이상 태어나지 않거나, 어쩌면 지금의 우리와 전혀 다른 종류의 아이가 태어나서 맞이할 수 있다는 섬뜻한 경고도 잊지 않고 있다.

환경오염은 국경이 없다. 메르스나 인풀루엔자처럼 국경을 마음대로 넘나들며, 국제공조에 틈이 있는 곳을 교묘히 찾아든다. 이웃에 화석연료를 불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는 세계의 공장 중국이 자리잡고 있다. 중국을 바라보는 시선은 따갑기 그지없다. '미세먼지를 다 마시고 싶다'는 대통령의 심정도 난도질당하고 있다. 하지만 희생양만 찾다가는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는 우리도 우리 몫을 감당해야 한다. 전문가도 키워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틈이 생긴 국제공조도 복원해야 한다. 때 마침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미세먼지 범국가기구' 의 설립을 추진한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그가 일을 시작하며 "미세먼지, 정치 문제되는 순간 실패"라는 뼈있는 주문을 했다. 정파나 국수주의가 더 이상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해야 한다.

후손 세대가 지금의 우리를 바라보며 '바보야, 문제는 정치도 경제도 아니야, 바로 미세먼지야!'라고 안타깝게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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