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 창] 브렉시트: 영광스러운 고립주의가 낳은 예견된 혼란

브렉시트 찬성 2년8개월 지나도록
EU 떠나지 못하고 서성대는 영국
폐쇄가 아닌 연대 추구하는 21세기
모두가 전근대적 민족주의 버려야

채형복 경북대 로스쿨 교수
채형복 경북대 로스쿨 교수

브렉시트(Brexit)란 영국의 EU 탈퇴(British+Exit)를 뜻하는 말이다.

우리와 특별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 말이 신문의 국제 면을 차지하는 단골 뉴스가 되었다. 브렉시트를 두고 영국은 심각한 정치사회적 갈등과 혼란에 빠져 있고, 국제사회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2016년 6월 23일 영국에서는 브렉시트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실시되었다. 그 결과, 예상을 깨고 51.9%의 영국민들은 EU 탈퇴에 찬성했다. 그로부터 2년 8개월이 지났지만 영국은 EU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영국은 무슨 이유로 브렉시트라는 함정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을까. 영국 특유의 고립주의와 유럽회의주의에서 그 본질적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전통적으로 영국은 "유럽 대륙의 일에 직접 관여하지 않으며, 유럽의 어느 나라와도 동맹을 맺지 않는다"는 고립주의에 의거한 대외 정책을 취하고 있다.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유럽 대륙에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유럽과 멀리 떨어져 있는 영국은 고립주의에 따라 대륙의 복잡한 문제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오히려 영국은 독자적인 정치제도와 대외 정책을 실시하여 영연방국가를 통합하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이 관점에서 보면, 고립주의는 영국에 빛과 영광을 안겨준 훌륭한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1950년대에 접어들어 유럽 통합이 본격화되면서 영국의 고립주의는 위기를 맞는다.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의 6개국은 1953년 유럽석탄철강공동체를 필두로 1958년 유럽경제공동체와 유럽원자력공동체로 이뤄진 유럽공동체(EC)를 설립하였다. 그 후 EC는 발전과 심화를 거듭하여 28개 회원국을 거느린 거대 통합체인 EU로 확대되었다.

유럽 통합이 국가 체제에 미친 영향은 다양하다.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EU의 설립으로 물리적 국경이 철폐됨으로써 '국가의 퇴각'을 가져왔다는 사실이다. 유럽 당국은 회원국들에 끊임없이 주권의 제한과 양보를 요구했다. 이에 회원국들은 농업과 통상 정책 등 일부 산업 부문에 대해 자발적으로 자국이 가진 주권을 공동체로 이전했다. EU 체제를 제외하고 근대 역사에서 국가가 자국의 주권을 자발적으로 이전하거나 양도한 사례는 없다. 오랜 세월 국가주의에 빠져 있던 영국은 이를 영토 주권의 침해로 받아들였다.

영국 특유의 고립주의는 유럽 통합 과정에서는 그 모습을 바꿔 유럽회의주의로 나타났다. EC가 출범할 당시 영국은 대륙 중심의 유럽 통합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영국의 이러한 태도는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영국 침공에 대한 앙금이 가시지 않은 탓도 있지만 고립주의가 직접 영향을 미쳤다고 봐야 한다. 영국은 1973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EC에 가입한다.

회원국이 되고 나서도 영국의 회의주의적 태도는 변하지 않는다. 영국은 유로존 가입을 유보하는 등 유럽 당국이 추진하는 통합 정책에 줄곧 미온적이거나 비판적인 태도를 취했다. 최근에는 리비아 난민과 테러 정책에 대한 이견으로 영국과 유럽 당국은 다시 심하게 부딪쳤다. 영국은 유럽 통합의 적극적 협력자라기보다는 줄곧 반대자나 회의주의자의 입장에 서 있는 셈이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를 보고 프랑스의 어느 언론인은 말했다. "유럽인들은 한배에 타고 있다." 그의 말대로 영국은 EU를 탈퇴하지 않고 유럽인들과 운명을 같이할까? 아니면 EU를 버리고 다시 '영광스러운 고립주의'로 돌아갈까? 하지만 어떤 선택을 하든 영국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21세기는 모든 국가와 민족이 고립이 아니라 연대를, 폐쇄가 아니라 결속을 통한 평화로운 사회를 원한다. 이를 위해 영국은 전근대적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버려야 한다.

EU와 이혼 혹은 혼인 유지? 세계의 이목이 브렉시트에 쏠리고 있다. 이제 영국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해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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