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대한민국, 지난 100년 다가올 100년

이대현 논설위원
이대현 논설위원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명언의 주어를 대한민국으로 바꿔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대한민국은 자랑스러운 역사를 써왔다. 1919년 임시정부 수립을 기점으로 지난 100년 동안 우리 민족이 걸어온 길은 기적 그 자체다. 식민 지배와 가난, 전쟁 등 질곡의 사슬을 끊고 산업화·민주화를 같이 성취한 나라는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온 국민이 흘린 피와 땀, 눈물의 총합(總合·the sum)이다. 제대로 된 나라를 아들, 딸에게 물려주려는 간절한 마음들과 행동들이 100년이란 긴 시간에 걸쳐 거대한 용광로에 결집했다. 온갖 것들이 용광로에 들어갔고 서로 섞이고 충돌한 끝에 대한민국이란 결정체를 만들어냈다. 지고지선한 것들만 들어가지 않았고 그럴 수도 없는 것이 역사의 섭리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에 맞춰 "국민의 평범한 삶에 좌절과 상처 주는 특권과 반칙의 시대를 반드시 끝내야 한다"고 했다. 또 "지난 100년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이룬 국가적 성취 과실이 국민 모두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일부에서 우리 역사를 역사 그대로 보지 않고 국민이 이룩한 성취를 깎아내리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란 발언도 했으나 지난 100년을 정의롭지 않고 공정하지 못한 시대로 규정하는 데 방점이 찍혔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문 대통령을 비롯해 진보가 기술하는 지난 100년 역사는 보수와 궤를 달리한다. 3·1운동→독립투쟁→4·19혁명→5·18민주화운동→6월항쟁→'촛불혁명'으로 대한민국 역사를 파악한다. 1948년 대한민국 건국, 6·25전쟁에서의 국가 수호, 산업화 등은 부정과 배척의 대상일 뿐이다.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 이승만에 대한 홀대와 모욕, 6·25에 책임이 있는 김원봉에 대한 서훈 추진 등은 진보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대일 청구권을 포기하는 대신 받은 협력자금으로 만든 포스코도 들어내자고 할지도 모를 일이다.

더 큰 우려는 진보 정권이 그들만의 잣대로 지난 100년에 대해 '역사공정'을 하는 것을 넘어 대한민국의 오늘과 내일마저 좌지우지하는 것이다. 보수 정권에서 이룩한 원전 강국을 계승할 마음은 애초부터 없었고 이것이 탈원전으로 표출됐다. 산업화에 편승해 탄생한 재벌은 척결의 대상이다. 미국과의 동맹은 헌신짝처럼 버려도 되는 것이고 일본은 '나쁜 나라'로 치부한다. 참사를 빚고 있는 코드 맞춤 인사, 북한에 대한 지나친 경도, 허물어진 안보, 포퓰리즘 정책들 역시 그 뿌리가 외눈박이 역사관에 기인한다고 봐야 한다.

문 대통령은 "새로운 100년을 준비해야 할 때"라고 했지만 정작 대통령의 언행은 미래보다 과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마르크스가 역사는 '나선형 발전'을 한다고 했는데도 대한민국은 오히려 뒷걸음치고 있다. 미세먼지가 없어졌지만 국민이 여전히 답답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소설가 김원우는 소설 '우국(憂國)의 바다'에서 조선이 망하는 과정을 그렸다.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은 나라가 망했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들이다. 구한말처럼 대한민국 앞날을 걱정하는 국민이 많다. 지난 100년을 헤쳐온 선조가 그랬듯이 이 시대를 사는 우리도 더 나은 나라를 후손에게 물려줄 의무가 있다. 이를 자각(自覺)하고 방법을 찾아 실천하라는 것이 지난 100년 역사가 가르쳐주는 진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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