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산온도(積算溫度; SUM of temperature)는 작물의 생육에 필요한 열 축적량을 나타내는 것으로, 작물의 생육 일수 동안 일일 평균 기온을 적산한 것을 말한다. 이때 어떤 날의 기온이 적산온도에 포함되려면, 당일 평균 기온이 해당 작물의 생육에 적합한 온도 범위 안에 있어야 한다.
◇ 착색제 살포·빛 반사판 설치
작물마다 적산온도에 포함될 수 있는 기온은 다르다. 가령, 고추는 높은 온도를 요구하는 대표적인 고온성 작물로 생육에 적합한 기온은 25∼30℃ 정도다. 품종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고추는 착과부터 붉은고추 수확까지 적산온도가 대체로 1,300℃∼1,500℃이다. 기온이 높은 여름에는 꽃이 피고 45∼55일 정도가 되면 열매가 완전히 붉게 익는다. 이것을 말려서 빻으면 정상적인 고춧가루가 된다.
고추는 9월, 10월이 되어도 계속 꽃이 피고 열매가 달린다. 그 수가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10월에 들어 기온이 내려가면 고추는 좀처럼 붉게 익지 않는다. 기온이 낮아 적산온도를 채우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을이면 상당수 농부들이 고추 착색제를 살포한다. 고추 착색제를 2번 정도 살포하면 2,3일 만에 풋고추가 잘 익은 고추처럼 빨갛게 변한다. 하지만 이 고추는 햇빛을 충분히 받아 붉게 익은 고추가 아니다.
그런 사례는 고추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약을 살포해 씨를 없앤 포도, 제대로 익기도 전에 수확해 유통과정에서 붉게 변하는 토마토, 빛 반사판으로 색깔을 낸 사과, 충분한 시간 대신 물과 비료를 듬뿍 투입해 재배하는 채소들…. 작물의 성장과 결실에 필요한 광선과 온도, 시간을 제공하는 대신 인위적으로 작물의 모양과 색깔, 크기를 조정한 것들이다. 이처럼 '제 속도'로 자라지 못한 채소나 열매는 부피가 크고 모양은 반듯하지만 함유하고 있는 성분은 '제 속도'로 자란 작물에 못 미친다.

◇ 채소 고유의 맛·향 떨어져 밋밋
전업농부들이 편법을 쓰는 것은 '수익성' 때문이다. 생업농가 입장에서 작물재배의 성공과 실패는 '화폐가치'로 평가된다. 가능한 큰 수익을 원하는 농부더러 '날씨가 서늘해져 고추가 붉게 익지 않더라도 그것이 자연의 순리이니 포기하시오'라고 말한다고 해서 받아들일 사람은 많지 않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제 속도'로 '알맞은 크기'로 자라야 한다. 그렇게 제속도로 자란 채소는 고유의 맛과 향, 색깔을 갖게 되고, 고유의 화학물질인 (파이토케미컬 ; phytochemical)을 식물체내에 축적하게 된다. 하지만 자연의 속도가 아니라 약물과 기구를 동원해 색깔만 입힌 채소에는 파이토케미컬이 부족하기 마련이다.
음식과 건강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밝힌 책 '제4의 식탁'을 출간한 바 있는 외과전문의 임재양 박사(임재양외과 원장)는 "파이토케미컬(phytochemical)은 식물(phyto)이 화학물질(chemical)을 낸다는 의미로, 미세먼지를 포함한 환경호르몬으로 약해져있는 우리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는데 중요한 물질"이라고 강조한다.
채소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파이토케미컬은 계절과 색깔을 달리하는 각각의 생존전략에 따라 생겨난다. 채소는 스트레스가 있어야 건강하게 자란다. 그런데 현대 농부들이 길러내는 채소에는 제철이 없고, 가뭄도, 추위도 더위도 없다. 그러니 스트레스도 없다. 사시사철 성장하기 딱 좋은 조건에서 충분한 물과 영양분을 먹고 자란다. 모양이 미끈하고 덩치만 클 뿐, 내용은 부실한 농산물인 것이다.

◇ "텃밭 가꾸기는 일상이 되어야"
임재양 박사는 "채소를 모양과 크기를 보지 말고, 고유의 맛과 향을 지닌 농산물을 선택해야 한다. 최대한 자연에 가까운 환경에서 자란 농산물은 대체로 크기가 작은 편에 속하고 식감은 좀 질기거나 단단한 편에 속한다. 건강한 농산물을 먹어야 우리 몸을 살릴 수 있다"고 강조 한다.
채소가 고유의 맛과 향, 크기를 갖도록 하려면 작물을 제 속도로, 가능한 자연에 가까운 환경에서 길러야 한다. 하지만 수익을 목표로 대량생산하는 생업농가에서는 그런 방식으로 채소를 기르는 어렵다. 수확량이 감소하고, 크기와 모양도 들쭉날쭉해 경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임 박사는 "제 속도로, 제 크기로 자란 건강한 채소를 먹고 싶다면 개인이 조금씩 채소를 직접 기르는 것이 좋다. 그런 점에서 텃밭 가꾸기는 생활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토마토는 맛이 대체로 밋밋하지만, 텃밭에서 제 속도로, 충분히 햇빛을 받아 붉게 익은 토마토는 아주 맛있다. 남들은 모르는 탁월한 비법이 있어서가 아니라 제 철에, 제 속도로 재배하는 덕분이다. 수익과 무관하게, 텃밭 가꾸기를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이면 채소의 참맛을 더 자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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