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과 기후는 언어 탄생의 뿌리다. 따라서 기후와 식물을 알아야만 언어 탄생의 배경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한글의 특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자연 생태를 잘 살펴야 한다. 한글의 다양성은 우리나라의 자연 생태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은 우리나라의 기후 때문에 생긴 것이고 느릅나무, 개나리, 수수꽃다리, 잣나무 등은 우리나라에 살기 때문에 생긴 나무 이름이다. 언어는 한 민족의 자존이다. 그래서 언어의 자존은 한 민족의 역사에서 아주 중요하다. 일제가 우리말을 말살시키려 했던 것도 언어가 민족의 자존이었기 때문이다.
느릅나뭇과의 갈잎큰키나무 느릅나무는 한자 유(楡)의 한글 이름이다. '유'는 이 나무로 배를 만들었기 때문에 생긴 글자이고, '느릅'은 줄기의 껍질이 흐물흐물한 데서 생긴 이름이다. 느릅나무는 버드나무와 더불어 봄의 불씨를 상징하는 나무였다.
느릅나무는 푸른색을 상징하기 때문에 봄의 불씨로 사용했다. '주례'에 따르면 중국 고대에는 계절에 따라 불씨를 바꾸었다. 계절에 따라 불씨 바꾸는 것을 개화(改火)라 불렀다. 느릅나무는 '청명화'(淸明火)로 불렸다. 계절에 따라 불씨를 바꾼 것은 불씨를 오래 사용하면 양기가 강해서 질병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절에 따라 불씨를 바꿔 질병을 막았던 것이다. 이 같은 사례는 우리나라 '태종실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회남자'에는 느릅나무가 5월의 나무로 등장한다. 회남자에는 음력 5월, 천자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백성이 쪽 풀을 베어 옷감에 물들이거나 나무를 태워 재를 만드는 행위를 못하게 하고, 삼베를 햇볕에 노출하지 못하게 하고, 성문이나 관문을 닫지 않게 하고, 관문이나 시장에서 세금을 징수하지 못하게 한다. 중죄인에게 형량을 감해주고 급식을 좋게 해주고, 홀아비와 과부를 보살펴 주고, 장례 치르는 사람에게 도움을 준다. 이렇게 함으로써 미세한 음의 기운이 잘 성장하도록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느릅나무는 가난을 구한 구황식물이었다. '삼국사기'에 등장하듯이 느릅나무는 고구려의 장군 온달이 노모를 봉양할 수 있도록 한 귀중한 나무였다. 평강공주는 온달이 느릅나무를 구해 노모를 봉양하던 시절에 만났다. 나의 어머니도 고향 뒷산 마음산 자락에 살고 있는 느릅나무 껍질로 가난을 이겨냈다. 어머니는 느릅나무를 '누룩나무'라 불렀다.
다산 정약용은 '경세유표'에서 느릅나무를 전나무, 잣나무, 흰느릅나무, 단풍나무, 비자나무와 더불어 아름다운 나무라는 이유로 벌채를 금하고 세금 부과의 대상으로 삼았다. 느릅나무가 3년 정도 자라면 서까래를, 10년 정도 자라면 각종 농기구를, 15년 정도 자라면 수레바퀴를 만들 수 있다. 이처럼 느릅나무는 중국 북위의 가사협이 쓴 '제민요술'에서 "한 번 수고하면 영원히 편안하다"라고 할 만큼 소중한 나무였다.
중국의 경우 느릅나무는 화폐의 특성을 표현하는데 기여한 나무였다. 한나라에서 만든 '유협전'(楡莢錢)은 동전의 무게가 느릅나무의 열매인 유협만큼 가벼워서 붙인 이름이다. 한나라에서 사용한 유협전은 앞 왕조인 진나라가 전국시대를 통일한 후 화폐통일 정책을 추진하면서 사용한 반량전(半兩錢)에 비해 아주 가벼웠다. 유협은 바람에 쉽게 날려갈 수 있을 만큼 아주 가볍다. 느릅나무는 중국 한족이 유목민족의 침략을 방어하는데 긴요한 나무였다. 중국의 '천하제일관'으로 불리는 산해관은 보루를 느릅나무로 만들어서 '유관'(楡館)이라 부른다. 중국에서는 늦봄에 느릅나무에 꽃이 필 때 내리는 비를 '유협우'(楡莢雨), 느릅나무에 꽃이 필 때 치른 과거시험을 '유책'(楡策)이라 불렀다.
우리나라 농촌 어디서나 느릅나무를 만날 수 있다. 느릅나뭇과에는 당느릅나무, 참느릅나무가 있다. 대구광역시 중구 달성공원의 참느릅나무는 전국에서도 보기 드물 만큼 귀한 나무다.

강판권 계명대학교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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