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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2·28기념 학생도서관, 학교도서관과 학생·시민 생활의 중심을 꿈꾼다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2·28민주운동에서 이름을 딴 대구2·28기념학생도서관이 30일 정식 개관한다. 도서관 전경. 채정민 기자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2·28민주운동에서 이름을 딴 대구2·28기념학생도서관이 30일 정식 개관한다. 도서관 전경. 채정민 기자

세계적 회사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의 책사랑은 유별나다. 그는 "우리 마을의 공공도서관이 오늘의 나를 있게 했다. 하버드대 졸업장보다 더 소중한 게 독서습관이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자녀에게도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게이츠의 저택에는 그가 아끼는 개인 도서관이 따로 있다고 한다. 1만권이 넘는 장서가 그곳에서 숨 쉰다.

'코덱스 레스터'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관찰한 것과 다양한 아이디어가 담긴 책. 1994년 게이츠는 경매를 통해 이 책을 무려 350여억원에 사들였다. 그리곤 컴퓨터와 박물관 등을 통해 사람들에게 공개했다. 문명의 창조와 발전을 가져온 원동력이 책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벌인 일이었다.

게이츠만이 아니다. 워런 버핏, 마크 저커버그 등 세계적 부자로 꼽히는 이들 상당수가 독서광이다. 책은 자아를 형성하고 소통 능력과 생각하는 습관을 키워준다. 간접적이나마 다른 이의 삶과 생각을 접하기에 책만한 것이 없다. 다양한 문화를 접하다 보면 시야가 넓어진다. 이들 부자가 책을 자주 손에 드는 것도 그 때문이다.

대구시교육청은 독서와 인문학 교육을 강조한다. 책쓰기를 비롯해 도서 기부, 인문학 독서 등 책과 관련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수년째 대학교수와 작가 등 관련 전문가를 시교육청으로 초청해 '화요일의 인문학' 강좌를 열고 있기도 하다.

도서관에 대한 관심도 적지 않다. 최근엔 대구2·28기념학생도서관을 열고 시범 운영에 들어갔다.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추고 학교도서관 지원 시스템도 마련해 눈길을 끈다. 학생과 지역주민이 쉽게 책을 접할 수 있게 하고, 학교도서관을 운영하는 데 적극적으로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30일 공식 개관식을 여는 대구2·28기념학생도서관의 속을 들여다 봤다.

◆맞춤형 프로그램 운영해 학교도서관의 메카로

대구2·28기념학생도서관(대구 동구 아양로41길 56)의 역사는 4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 대구고등학교 부지에 '경상북도학생도서관'이란 이름으로 1971년 개관했는데 1991년 옛 경북고등학교 후적지에 터를 다시 잡았다. 간판도 '대봉도서관'으로 바꿔 달았다. 이후 지난해 9월까지 도서관을 운영했다.

시교육청은 지난해 말 대봉도서관을 옛 신암중학교 자리로 이전했다. 학생 수 부족으로 인근 학교와 통폐합하는 바람에 교사(校舍)가 비게 되자 예산 80억원을 투입해 도서관으로 리모델링했다. 이름도 대구와 학생, 그리고 2·28민주운동을 나타내는 것으로 바꿨다. 지상 4층, 연면적 6천484㎡인 2·28기념학생도서관은 그렇게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은 학교도서관집중지원센터 역할을 맡는다. 지역 시립도서관들은 총무과, 자료봉사과, 독서문화과 등 3개 과 체제로 운영되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곳은 다르다. 직원 9명이 배치된 학교도서관지원과가 따로 있다. 그만큼 458개인 대구 학교도서관에 관심을 쏟겠다는 의미다.

도서관 관련 전공이 아닌 기간제 교사들이 도서관을 운영해야 하는 곳은 현재 153개교. 이들이 겪는 어려움을 덜어주고 학교도서관을 활성화하기 위해 2·28기념학생도서관은 담임사서제를 운영한다. 소속 사서 8명이 1인당 25~27개교를 맡아 기간제 교사들의 업무 역량을 키워주고, 독서 프로그램도 지원한다.

전체 학교를 대상으로 시행하는 무료 택배 서비스도 인상적이다. 같은 책 25권으로 책꾸러미를 만들어 원하는 학교에 무료로 보내준다. 한 학급이 수업을 진행하려고 같은 책을 대량으로 사야 하는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뜻. 도서관이 소장한 교수·학습용 자료도 이 서비스 대상이다. 그림책 원화(액자) 27종(무료 택배는 10종)도 택배를 통해 대출할 수 있다.

또 기간제 교사들이 학교도서관 담당이 된 학교를 위해 다양한 독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테마별 독서문화 행사 목록, 학교별 예산·특성에 맞춘 도서 구입 목록을 제공한다. 초등학교와 '내 꿈 바라보기, 꿈 쓰기'와 '교과서 속 그림책 읽어주기', 중·고교를 대상으로는 '청소년 인문학 작가와의 만남'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2·28기념학생도서관 1층 로비에 있는 문학자판기(사진 왼쪽). 도서관을 찾은 주민 김정록 씨가 문학자판기의
2·28기념학생도서관 1층 로비에 있는 문학자판기(사진 왼쪽). 도서관을 찾은 주민 김정록 씨가 문학자판기의 '짧은 글' 버튼을 누르자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중 일부 문장이 인쇄된 쪽지가 출력됐다. 채정민 기자

◆편의성과 다양성 앞세워 학생과 주민 속으로

2·28기념학생도서관은 신성초등학교와 대구관광고등학교 인근에 자리를 잡았다. 비록 폐교 교사를 활용한 곳이지만 새 단장을 한 덕분에 건물 내·외관 모두 깔끔하다. 학교도서관을 집중적으로 지원할 뿐 아니라 학생과 지역주민이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한다는 것 역시 목표로 잡은 만큼 다양한 시설과 프로그램으로 눈길을 끈다.

도서관 1층 어린이자료실 앞에는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이용할 수 있는 스마트도서관과 무인 자가반납기가 들어섰다. 로비의 문학자판기도 재미있다. 주민 김정록(63) 씨는 "이름 자체가 독특하다. '긴 글'과 '짧은 글'이라 적힌 버튼 중 하나를 누르니 쪽지가 출력돼 나왔다. 특정 문학 작품 중 일부 글귀가 인쇄돼 있었다"며 "쪽지를 읽다가 그 내용이 담긴 책까지 찾아봤다. 독서를 유도하기에 괜찮은 아이디어다"고 했다. 로비에는 도서관 이름을 따온 사건인 2·28민주운동 관련 자료도 전시했다.

2층에는 일반자료실과 청소년존, 3층에는 VR체험실과 청소년체험활동실 및 강좌실이 둥지를 틀었다. 시청각실이 있는 곳은 4층. 소통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려고 2, 4층엔 북카페를 뒀다. 3, 4층은 독서뿐 아니라 학생 체험활동과 평생강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해 마련한 공간이다.

이곳이 운영하는 평생교육 프로그램(문의는 독서문화과 053-231-2832)은 수십 개다. 그 가운데 ▷동화 창작교실 ▷그림책으로 힐링하기 ▷영어 그림책 활용법 ▷자녀와 소통하는 감성 화법 등은 도서관이 추천하는 프로그램. '사서와 함께하는 책나라 여행'을 비롯해 ▷토요 세계 그림동화 이야기 ▷일요 동화 구연 ▷1일 도서관 체험학습 등은 어린이들이 언제나 참여할 수 있는 것들이다.

'사서&북 큐레이션' 프로그램은 노경자 도서관장과 직원들의 야심작. 그 가운데 매월 주제를 정해 관련된 책을 소개하는 '주제가 있는 책장'은 은근히 호기심을 자아낸다. 이달에는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다'를 주제로 책과 그것을 원작으로 한 영화, 드라마를 소개했다. '남한산성', '설국열차', '히든 피겨스' 등이 그것이다. 다음 달 주제는 '꽃보다 가족'. 가족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 대상이다.

노 관장은 "빅데이터에 기반해 대구의 인기 대출도서들을 소개하는 '베스트 대출도서', '초등 교과 연계도서' 등도 눈여겨볼 만하다"며 "폐교를 도서관으로 다시 꾸민 사례는 전국적으로 처음이다. 책 읽는 문화를 가꾸고 복합문화공간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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