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가 읽은 책]영혼의 친구와 나누는 대화 / 브람스를 좋아하세요/프랑수아즈 사강/민음사/2018

누군가와 같은 생각, 감정을 공유할 때 우리는 가슴 벅참을 느낀다. 그리고 그들은 반드시 친구가 된다. '프랑수아즈 사강'과 나는 단번에 친구가 되었다. 그의 소설이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여서만은 아니다. 그 이상의 특별함이 있다. 바로 사랑이라는 감정 아래 놓인 남녀의 섬세하고도 탁월한 심리묘사. 그의 글을 그저 연애소설이 아닌 문학의 반열에 올려놓은 이유이기도 하다.

소설 속 인물들의 감정, 대사, 행동들은 남녀의 심리에 대한 깊은 통찰 아래 모두 계산된 것이었다. 내가 경험한 감정을 토로하는 주인공이라니! 겨우 몇 페이지 만에 성별도 나이도 모를 작가에게 나는 깊은 애정을 느꼈다. 그가 남자라면 세상에서 여자의 심리를 가장 잘 아는 남자로 그를 찬미할 것이고, 그가 여자라도 그녀와 사랑에 빠지리라. 책을 읽다 말고 흥분된 마음으로 작가 이력을 찾았다. '아 역시 여자였구나.' 하는 순간, 당시 작가 나이 스물넷. 그 나이에 인생을 다 아는 것 같은 완숙함이라니?!

최유정 작
최유정 작 '남과 여 그리고 사랑'

본명 프랑수아즈 쿠아레. 1935년 프랑스 카자르크에서 태어났다. 1954년 19세에 첫 소설 '슬픔이여 안녕'을 발표해 프랑스 문단에 커다란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그 해 비평가상을 받았다.'어떤 미소', '한 달 후, 일 년 후'에 이어 1959년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발표했다. 알코올과 마약, 도박 중독, 두 번의 결혼과 이혼 등 굴곡진 생애를 보내면서도 소설을 비롯해 자서전, 희곡, 시나리오 등 다양한 작품을 꾸준히 발표했다.

서른아홉의 실내장식가 폴은 남자친구인 로제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그가 자신을 외롭게 하고 있다는 말조차 꺼낼 수 없다. 그런 그녀를 알면서도 그녀가 원하는 것을 줄 수 없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로제는 다른 어린여자와 하룻밤을 보내기도 한다. 수려한 외모를 가진 스물다섯의 변호사 시몽은 폴에게 첫눈에 반해 그녀에게 애정공세를 퍼붓는다. 폴은 그런 그에게 호기심과 불안감을 동시에 느낀다. 주목할 곳은 이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 속에 복잡하고 섬세하게 묘사된 인물들의 심리다.

"그녀는 로제에게 설명할 수 없으리라. 자신이 지쳤다는 것, 그들 두 사람 사이에 하나의 규율처럼 자리 잡은 이 자유를 이제 자신은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그 자유는 로제만 이용하고 있고, 그녀에게는 자유가 고독을 의미할 뿐이 아니던가."(p.11) "오늘 밤 그녀 곁을 떠나면서 그녀가 슬퍼한다는 것을 느꼈지만 (중략) 그녀가 그 자신에게 막연하게 무엇인가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 무엇이라는 건 그가 그녀에게 줄 수 없는 것, 그가 이제까지 아무에게도 줄 수 없었던 것이었다.(p.18)"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느끼는 감정들은 우리 삶 속의 실제 감정들과 맞닿아 있다. 아는 언니가 들려주는 경험담처럼 그녀는 소설을 통해 어떤 보편적인 남녀 심리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친구를 만난 기분이다. 오늘은 복잡한 감정들을 친구에게 쏟아내는 대신 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 쏟아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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