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른 아침에] 이건 명백히 불법이다

몸싸움 다시 등장한 선진화 국회
패스트트랙 물리적 저지로 충돌
위원 강제 사보임도 국회법 위반
스스로 정한 법·원칙부터 지켜야

노동일 경희대 교수
노동일 경희대 교수

이른바 국회 선진화법 이후 국회에서 험한 꼴은 다시 보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선진화' 이름이 붙었다고 곧바로 선진 국회를 기대한 건 물론 아니다. 그냥 법 취지대로 몸싸움 대신 말싸움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할 것이라 믿었다.

선진화법은 국회의장의 법안 직권상정을 엄격히 제한한다. 천재지변, 비상사태 혹은 여야 합의 외에는 불가하다. 법안을 강행 처리하려는 여당과 이를 막으려는 야당 사이에 늘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신속처리안건 지정 제도, 이른바 패스트트랙은 그에 대응하는 법안 처리 방식이다. 여야 합의가 안 될 경우 의장의 강행 처리 대신 상임위 재적 위원 5분의 3 이상 동의로 법안을 본회의에 부의할 수 있게 된다.

멱살잡이와 주먹다짐은 기본이요 해머와 전기톱, 소화기, 최루탄 등이 난무하던 국회 풍경을 바꾸기 위해서다. 국회법에 처벌 조항까지 신설되었다. 선진화법은 2012년 당시 새누리당 주도로 만들어졌다. 효과도 있었다. 2011년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둘러싼 폭력 사태가 마지막 '동물국회'였다. 2016년 테러방지법 직권상정도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통한 민주당의 의사 진행 방해가 있었을 뿐 몸싸움 없이 처리되었다. 그와 함께 '동물국회'라는 조롱도 사라졌다. 한마디로 패스트트랙은 국회법에 정해진 법안 처리 절차의 하나이다. 자유한국당이 패스트트랙을 물리적으로 저지한 행위는 자신들이 만든 규칙을 위반한 것이다.

국회법 위반은 이뿐이 아니다. 바른미래당과 문희상 국회의장은 의원 사·보임에 관한 국회법을 어겼다. 국회법 48조 6항이 문제의 조항이다. "(생략) 위원을 개선할 때 임시회의 경우에는 회기 중 개선될 수 없고, 정기회의 경우에는 선임 또는 개선 후 30일 이내에는 개선될 수 없다. 다만, 위원이 질병 등 부득이한 사유로 의장의 허가를 받은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로 되어 있다.

임시회 회기 중인 현재 (상임위) 위원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은 규정상 명백하다. 단서에 해당하려면 '위원' 자신이 질병 등을 이유로 의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다른 해석이 가능하지 않다. 2003년 만들어진 해당 조문의 입법 취지는 분명하다. 의원의 개인적 의사에 반해 강제로 상임위원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2001년 당시 한나라당 소속 김홍신 의원은 보건복지위 소속으로 건강보험 재정 통합이 소신이었다. 한나라당은 재정 분리 당론에 반대하는 김 의원을 환경노동위원회로 강제 사·보임했다. 김 의원이 청구한 권한쟁의 심판에서 헌재는 '의원 개인의 소신'보다 당론을 강제할 수 있는 '정당의 권한'이 우선된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 후 만들어진 게 국회법 48조 6항이다.

앞서 본 대로 임시회 기간 등에는 의원 개인의 의사에 반해 강제로 사·보임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다.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서 오신환, 권은희 의원을 강제로 사·보임한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의 행위는 국회법을 위반한 것이다. 이를 허가한 문 의장 역시 마찬가지다. 2017년 정세균 의장은 자유한국당이 요청한 김현아 의원의 사·보임을 거부한 바 있다. 당사자의 의사에 반한다는 이유였다. 당론도 아니고, 사·보임 요청서를 팩스로 제출하고, 의장은 병상에서 구두로 결재하고, 직전 의장의 선례와도 맞지 않고…. 갖은 꼼수까지 곁들인 것은 몸싸움 못지않게 '선진'과는 거리가 멀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손쉬운 양비론, 양시론이 아니다. 국회가 보이는 온갖 추태는 모두가 규칙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누가 누구를 비난할 처지가 아니지 싶다. 선거제 개혁, 검찰 개혁, 독재 타도, 헌법 수호. 명분이야 얼마든지 댈 수 있다. 하지만 국회의원 모두 스스로 정한 법과 원칙을 위반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제라도 제 논에 물 대기식 해석을 멈추고 모두 이성을 회복해야 한다. 언론은 다시 동물국회라고 비웃지만 국민은 웃고 싶지 않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 무엇이겠는가. 자신이 규칙을 정하고 그것이 불리하더라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아니겠는가. 선진화는 멀어도 좋다. 어떤 이유라도 동물국회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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